공짜는 없다, 팬들은 감동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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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는 없다, 팬들은 감동을 원한다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6-09 09:33:01

‘사랑에 빠지는 일이 이렇게 빨리 일어나는 것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에 선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욕구가 해결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출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의 제2단계에 불과하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을 빚어내며 우리의 욕망이 그 사랑을 중심으로 구체화된다.’(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중에서)

알랭 드 보통은 영국의 소설가이자 철학자다.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영어와 불어, 독일어를 유창하게 한다. 대학에서 역사를, 대학원에선 철학을 전공했다. 덕분에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인문학적 지식으로 재미를 더하며 세련되고 독특한 스타일의 소설을 쓴다. 스물세 살에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는 이어서 ‘사랑’을 주제로 소설 두 편을 더 펴내며 ‘사랑 전문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어떤 사람을 두고 자신의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 살아 보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클로이를 만난 직후, 그녀를 필생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모든 것은 타협이고 자기기만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알랭 드 보통은 그 순간부터 펼쳐지는 서사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와 함께 사랑이란 관계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추적한다.

사랑은 어느 날 불쑥 어디선가 찾아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랑을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데에는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다. 세속적인 사람은 육체의 아름다움이나 관능 또는 부나 명예, 지성에 감동받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 감동이 곧 사랑이다.

반면에 감성적인 사람은 연민·배려·동지애 같은 것에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주는 감동은 익숙함이라는 복병을 만나면 금세 시들해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 주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밖에는 없으며 상대가 줄 수 없는 무조건적 사랑을 바라면서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감동과 함께 타협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랑은 골치 아픈 것이다. 요즘 아이돌이나 특정 정파·정치인에 대한 팬덤 문화가 유행하게 된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른다. 관계 유지를 위해 골머리 썩일 필요 없이 마음껏 열광하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들은 제 맘대로 열광한다 하더라도 그 열광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가끔이라도 어떤 형태로든 진한 감동을 선물해 주어야 한다.

우리 정치인 중에도 국민에게 감동을 준 사람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무서운 아버지 같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 독재자라 손가락질하면서도 그가 나라와 국민에 대한 진심어린 충정으로 경제개발을 이끌었다는 것은 대다수가 수긍하는 사실이다. 요즘에도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그의 충정이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또한 IMF의 경제 위기에서 혼신의 힘과 지혜로 나라를 지켜 냈다. 그러나 그는 요즘 정치인들처럼 스스로를 일을 잘한다거나 유능하다고 내세우지 않았고, 재임 기간 중 두 아들이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될 때도 지지자들을 동원해서 시위를 하거나 검찰을 압박해서 구속을 막지 않았다. 대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 또한 많은 사람이 그리워하는 정치인이다. 제16대 총선 당시 종로구를 두고 민주당 후보로선 험지인 부산에 출마해서 낙선한 일은 최근에도 매스컴에서 언급되었다. 연고도 없이 당선이 확실시되는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이재명 의원과 비교되는 행보였기 때문이다. 그때 붙여진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은 그가 우리에게 심어 준 감동의 징표와도 같은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도 공과가 있고 극성팬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팬은 최근의 정치판을 휘젓고 다닌 문빠들, 정권이 바뀌며 그들이 잠잠해진 자리에 대신 들어선 ‘개딸’들과는 달랐다. 이 세 전직 대통령에게 문빠나 개딸들을 붙여 주겠다고 하면 아마 세 사람 모두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팬덤을 거느린 요즘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자신의 팬들 또한 사실은 내심 감동받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무조건적인 열광과 지지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열광과 지지에 기대 권력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그들을 감동시킬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감동은 억지나 ‘자뻑’으로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 진솔함만이 감동을 낳는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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