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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5월29일 유러피언컵(유럽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결승전이 열린 벨기에 브뤼셀의 헤이젤 경기장에서 잉글랜드의 리버풀 FC 서포터스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FC 서포터스 사이에 집단 패싸움이 벌어졌다. 경기 시작 전부터 과열된 분위기 탓에 리버풀 팬들이 유벤투스 팬들을 공격한 것이다. 유벤투스 팬들이 공격을 피하려다 한 쪽으로 몰리면서 경기장의 벽이 무너졌고, 39명이 사망하고 600여명이 부상하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이른 바 ‘헤이젤 참사’다.
사망자 대부분은 유벤투스 팬들이었다. 이 사건으로 리버풀 서포터스 29명이 구속됐다. 결국 경기에서 져 우승도 놓치고 응원 문화에 있어서도 비극을 불러일으키게 된 셈이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사건을 일으킨 리버풀에게 10년 동안 유럽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중징계를 내렸고, 잉글랜드의 모든 팀들에게는 5년간 유럽 클럽 대항전 출전권을 박탈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명문 클럽인 리버풀은 이로부터 4년 뒤 또 다른 대참사를 일으켰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준결승전이 열린 힐스버러 스타디움(셰필드 웬즈데이의 홈구장)에서 리버풀 원정 팬들은 앞쪽에 많은 팬들이 들어차 있는지도 모르고 계속 밀어부쳐 펜스가 무너지는 압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에는 모든 구장들이 거의 입석이었기에 인명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으며, 96명이 숨지고 75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경기에 앞서 응원가 합창은 장관
리버풀 팬은 EPL 20개 구단 가운데 팀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각별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거의 광적일 정도다. 리버풀 팬들은 홈 경기 시작 전에는 반드시 ‘You'll Never Walk Alone(당신은 결코 홀로 걷지 않을 거예요)’라는 노래를 합창하곤 한다. “폭풍 속을 걸을 때에도 머리를 들어라. 그리고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라는 내용으로 일종의 응원가인 셈이다.
리버풀의 전통적인 붉은 색 유니폼을 입은 관중의 떼창은 가히 전율을 불러일으킬 만큼 장관을 연출한다. 방문팀으로서는 이러한 모습에 경기 시작 전부터 기가 죽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5만4000여명 규모의 리버풀 홈구장인 안필드 스타디움은 ‘원정팀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안필드 구장에서는 원정팀이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노스웨스트 더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이른바 머지 사이드 더비라고 불리는 같은 지역의 에버턴 FC가 리버풀과 오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우승 위해선 투자 아끼지 않는 경영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프로 리그에 대항해 흥행성을 높이기 위해 1992년에 출범한 EPL 체제에서 리버풀은 2019~20시즌 리그 정상에 오른 게 처음이었다. EPL 체제 출범 이전에는 무려 18번이나 정상에 올라 잉글랜드 프로 축구의 강자로 군림했다.
올해로 팀 창단 120년을 맞은 리버풀은 2010년대 중반까지 한동안 침체기를 겪으며 ‘몰락한 명가’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2015년부터 강자로서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2015년 10월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출신의 위르겐 클롭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완전히 부활한 모습이었다.
리버풀은 AS 로마에서 활약하던 이집트 출신의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를 영입했고, 기존의 사디오 마네, 호베르투 피르미누와 공격 삼각편대를 구성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면서 팀의 공격력을 증강시켰다. 2018년에는 유럽 최고의 수비수라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버질 판 데이크를 데려왔다. 우승을 위해서라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게 리버풀 구단의 경영 방식이다.
2021~22시즌 우승과 준우승 각 두 차례
2월 ‘갑부구단’ 첼시를 꺾고 리그컵 우승을 차지한 여세를 몰아 5월에도 다시 한 번 첼시를 꺾고 FA컵 우승을 차지해 리버풀은 사상 초유의 쿼드러플(한 시즌 4개 대회에서의 우승)을 눈앞에 둬 세계 축구판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리버풀은 당시 EPL에서 선두, ‘별들의 전쟁’이라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도 파죽지세로 달렸다. 스페인리그의 레알 마드리드, 독일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 등 그 어느 클럽도 유럽 축구 역사상 쿼드러플을 손에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역대 최고의 리버풀’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EPL에서 맨체스터 시티에 승점 1점 차로, UCL 결승에선 슈팅수 23대3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도 통한의 분루를 삼켜야 했다.
승점 ‘1점’과 ‘1골’의 차이로 결국 두 번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2021~22 시즌을 끝낸 리버풀이었다. 가장 큰 트로피 두 개를 놓쳐 아쉬웠지만 리버풀 팬들은 트로피 퍼레이드를 벌이는 등 축승회를 열어 선수단을 격려했다. 클롭 감독과 선수들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성스런 리버풀 팬다웠다.
그러나 지난 달 말 프랑스 파리의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열린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와의 UCL 결승전을 앞두고 리버풀 팬들은 또 다른 불상사를 일으켰다. 원정 응원에 나선 리버풀 팬 6만여명이 제시한 입장권의 70%가량이 가짜였고, 티켓 없이 경기장 담장을 넘은 리버풀 팬들을 단속하느라 경찰이 불가피하게 최루 가스와 후추 스프레이를 발사하게 됐다는 게 프랑스 내무부의 공식적인 발표 내용이다.
이러한 최루탄 소동으로 경기는 30여분 늦게 킥 오프됐다. 프랑스 정부의 진압 과정과 이러한 발표에 영국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처사라며 발끈하고 나서 자칫 양국 간에 외교 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
축제돼야 할 UCL 결승전 최루가스 난무
리버풀 팬들이 과거에 일으킨 두 차례의 사고보다는 강도가 훨씬 낮지만 엄연한 사고임에는 틀림없다. 단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런 탓에 유럽 클럽 축구의 축제가 되어야 할 UCL 결승전이 경찰력과 최루가스가 난무해 무섭고 고통스러운 사건으로 전락했다.
여러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격렬한 응원 문화를 갖고 있는 스포츠가 바로 축구다. 오죽했으면 훌리건(hooligan·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과격 축구팬)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리버풀 팬들의 그 열정에는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법과 상식을 벗어난 사랑은 팀에 대한 응원도 애정도 결코 아니다. 어떤 것이 올바른 응원문화이고, 어떤 것이 건전한 팬 문화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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