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발행 막히니 찬밥 신세된 은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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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은행대출로 돈 조달… 은행채 약세 발행 두드러져
증권업계 “회사채 회복되면 기업대출 증가세 줄어들 것”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6-09 11:35:14

▲ 5대 은행 기업대출은 올해 들어 32조원이 증가했고 대기업 대출도 7조6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대기업 대출은 지난달 2조3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스카이데일리

회사채 발행시장 경색으로 기업들이 은행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은행채 약세 발행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은행권에 대한 LCR(유동성커버리지비율) 규제의 단계적 정상화도 영향을 미쳤다. 증권업계는 회사채 수요가 회복되면 기업대출 증가가 줄어들 것을 전망하며 하반기에 은행채 약세 발행이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9일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채 발행 및 순발행은 각각 19조7000억원, 3조8000억원으로 올해 들어 가장 규모가 컸던 가운데 약세 발행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러한 은행채 약세는 이미 약세 폭이 심화된 한전채(한국전력공사 발행 채권)를 제외한 여타 공사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회사채는 AA등급 이상 우량 회사채 만기 3년물 중심으로 민평 대비 언더 발행도 나오는 등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고 한전채도 리테일 수요에 힘입어 개별 민평 대비 언더 발행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 상황인데 펀더멘털(기초체력) 측면에서 문제가 없는 은행채 약세는 다소 이례적인 상황이다”고 말했다.

은행채 약세의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지목했다. 우선 ‘기업들의 자금 조달원 변화’다. 우량 회사채는 발행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A등급 이하 회사채 시장은 여전히 수요가 얼어붙어 있는 상태라서 회사채 발행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들이 회사채 대신 은행 대출창구를 활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원은 “롯데나 SK계열 A등급 계열사들이 절차가 복잡하고 평판 훼손도 우려되는 P-CBO(채권담보부증권)를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은행권 차입으로 자금을 조달할 가능성은 더욱 높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예적금은 지난달 20조원 가까이 유입된 반면 가계대출은 1조3000억원 감소했다. 이것만 보면 은행채 약세 발행까지 불사하면서 자금을 조달할 이유는 없는데 은행채 약세 발행을 하는 것은 기업대출이 크게 증가하면서 대출재원 마련을 위한 자금조달 필요성이 강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 연구원은 “5대 은행 기업대출은 올해 들어 32조원이 증가했고 대기업 대출도 7조6000억원 증가했다. 특히 5월 대기업 대출은 2조3000억원 증가해 올해 중 증가폭이 가장 컸다”며 “자금이 필요한 대기업이 은행으로 몰리면서 대출재원마련을 위한 은행채 발행 증가 및 약세 발행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 5대 은행 가계대출 및 예적금 잔액, 가계 및 대기업 대출 잔액. [자료=한국투자증권]

LCR 규제 정상화 진행도 은행채 약세 발행 배경으로 꼽았다. LCR은 고유동성자산을 향후 1개월간 순현금유출액(현금유출-현금유입)으로 나눈 비율이다. 금융당국은 현재 85%로 완화돼 있는 LCR 규제를 7~9월 중에 90%로 5%p 상향 조정하고 이후 분기별로 2.5%p씩 높여 2023년 7월부터는 100%로 정상화 시킬 계획이다.

김 연구원은 “과거 사례를 보면 시중은행들은 통상적으로 규제환경 변화 등에 따라 규제 준수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에 봉착하고 은행채 발행을 통해 규제 준수의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경우 금리 불문하고 은행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을 최우선 순위로 두곤 했다”며 “LCR 규제 준수가 목적인 경우 은행은 은행채 약세 발행을 불사하면서 자금을 조달해 고유동성자산을 매입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7월부터 90%로 상향조정되는 LCR 준수를 위해 은행이 은행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 고유동성자산을 매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증가는 채권시장의 회사채 수요가 회복되면 자연적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우량 회사채 수요는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수요 회복이 A등급 회사채까지 확산되면 은행권의 기업 대출 증가세는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기업들은 최근 회사채 금리 급등으로 회사채 발행금리보다 은행 차입금리가 낮아졌지만 은행 차입 시 1년 주기로 금리변동의 리스크를 안고 있다”며 “하반기 국채시장이 안정을 찾고 이후 순차적으로 크레딧채권시장이 안정을 찾으면 기업들은 회사채 시장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시중은행의 3월말 기준 LCR이 내년 초 수준의 강화된 규제비율을 맞추고 있고 3월말 이후 LCR이 추가 상승했을 가능성도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은행채 약세 발행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며 “이러한 점을 종합하면 은행채 약세 발행 경향은 이달 중에는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하반기에는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윤승준 기자 sjyoo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