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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프로골프(PGA)투어와 유럽·일본·호주·남아공 선샤인 투어·아시안 프로 골프투어 등을 세계 6대 골프기구라고 부른다. 한국의 코리아 투어는 총상금 규모나 출전 선수들의 세계 랭킹이 비교적 낮은 탓에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다.
6대 골프기구 중에서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집결해 있는 PGA 투어는 최상위의 독보적 위치에 군림해 왔던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PGA투어는 2021∼22시즌 47개 대회에 총상금만 해도 무려 4억8280만달러(한화 약 5794억원)에 달한다. 1년에 130개 이상의 각종 프로 골프대회를 주관하는 47년 역사의 PGA 투어는 감히 언터처블이다.
사우디의 스포츠 와싱 속셈도 없지 않아
세계 골프의 최대 흥행시장인 PGA 투어가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석유 부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PIF)가 후원하는 리브(LIV)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이하 LIV 골프)가 미국이 주도하는 PGA투어의 아성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석유를 팔아서 번 돈을 골프에 투자해 PGA 투어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는 심산이다. 스포츠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반 인권적인 국가 이미지를 세탁하겠다는 속셈도 없지 않다. 이른바 스포츠 와싱(sports washing)이다.
과거에도 PGA 투어의 독점적인 권위에 도전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말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최대 관건인 자금력을 갖춘 막강한 세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사우디 골프 리그를 모태로 2년여의 담금질을 마친 LIV 골프가 무성한 소문과 화제 끝에 드디어 그 면모를 드러냈다. LIV 골프 개막전이 9일(현지시간)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영국 런던의 센추리온 클럽에서 나름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남아공의 샬 슈와츨은 LIV 개인전 우승 상금으로 400만 달러, 단체전에서도 1위에 올라 대회 상금만 475만달러를 획득했다. 골프 역사상 가장 큰 우승 상금이었다. 사흘간 203타를 쳤으니 한 샷당 무려 3000만원을 번 셈이다. 같은 기간 열린 PGA투어 RBC 캐나다오픈 우승자인 로리 매킬로이(북 아일랜드)의 상금은 156만6000달러였다.
큰 상금에 PGA투어 등 위협 느껴
PGA통산 20승에 빛나는 ‘백상어’ 그레그 노먼(호주)이 주도하는 LIV 골프 시리즈는 8개 대회 총상금을 2억5500만 달러로 설정하는 등 막대한 오일달러를 앞세워 정상급 선수들을 그러모으고 있다.
LIV골프의 대회 총상금은 PGA 투어와 DP 월드(전 유러피언) 투어 선수들이 유혹을 느낄 만큼 엄청나다. 대회당 평균 상금으로 비교하면 PGA투어가 1027만달러로 LIV골프(3187만달러)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LIV 골프의 대회당 평균 상금은 PGA투어 역대 최고 상금액이었던 ‘제5의 메이저대회’라고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2000만달러도 훌쩍 뛰어넘는다.
LIV 골프대회는 출전 인원 수도 48명밖에 안 돼 대회당 144명가량인 PGA투어의 3분의 1 수준이다. 훨씬 많은 상금을 적은 선수들끼리 나눠 갖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PGA투어 선수들은 LIV 출전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LIV 골프의 선수 1인당 한 대회 평균 상금은 6억5000만원으로 PGA투어에 비해 무려 10배가 차이난다.
LIV 골프는 대회 방식도 일반 대회와 달랐다. 한마디로 ‘파격’이었다. 보통 남자 골프대회는 2라운드 결과 커트라인(합격선)을 통과한 선수들만으로 3, 4라운드를 통해 우승자를 가리는 반면, LIV골프는 48명이 출전해 각 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티오프하는 샷건 방식에 3라운드 54홀로 콤팩트하게 치러졌다. 커트라인 없이 모든 선수가 마지막까지 경쟁했고, 꼴찌의 상금도 12만달러나 됐다.
대회 명칭인 ‘LIV’는 숫자 ‘54’를 뜻한다. 로마 숫자 ‘L’(50)과 ‘IV’(4)를 나란히 써 54홀로 진행되는 LIV 시리즈만의 특징을 담아냈다. ‘54’는 골프에서 ‘완벽한 라운드’를 뜻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54타는 한 라운드 18홀을 모두 버디로 장식할 경우 나오는 꿈의 타수다. 샷건 방식으로 치러져 경기 시간은 5시간 정도로 짧고, 나흘간 4라운드 72홀을 진행하는 PGA 투어와 달리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이 적은 것도 매력적인 요소다.
남자 골프 전 세계랭킹 1위였던 더스틴 존슨(미국)·재미 교포 케빈 나·리 웨스트우드·이언 폴터(잉글랜드) 등은 LIV 골프에 합류했다. PGA투어 통산 45승에 빛나는 왼손잡이 필 미컬슨(미국)은 48번째로 막차를 탔다. 케빈 나는 LIV 골프에 합류한 뒤 PGA 투어 탈퇴를 선언했다.
LIV 골프 다음 대회에는 ‘필드 위의 물리학자’라고 불리는 PGA투어의 대표 장타자인 브라이언 디섐보, 2018년 마스터스 챔피언 패트릭 리드(이상 미국) 등이 합류할 것이라고 한다. LIV골프는 오는 30일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 10월 7일 태국 방콕 등지에서 7개 대회를 더 치를 예정이다.
골프의 아이콘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레전드’ 잭 니클라우스(이상 미국)는 1억달러가량의 계약금을 내세운 LIV 골프의 제의를 받았지만 모두 이를 거절했다. PGA투어의 전통과 유산, 그간의 의리 때문이었다.
프로선수는 상금을 쫓는 개인 사업자
돈 잔치를 벌이는 LIV 골프의 등장에 PGA 투어는 물론이고, DP 월드 투어에는 비상이 걸렸다. 자칫 잘못하면 선수 유출 및 투어의 존립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를 환대할 리가 없다.
PGA 투어는 LIV 골프가 끝나자마자 출전했던 PGA투어 멤버 17명에 대해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린 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투어를 지키기 위해 돈만 쫓는 선수를 퇴출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프로 골프 선수는 투어에서 급여를 받는 게 아니라 성적에 따른 상금을 쫓는 고액 전문 직업인이다. 더구나 프로골퍼는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어떤 투어에서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PGA투어가 민감하게 자격 정지라는 칼을 빼든 것은 LIV 골프의 등장에 큰 위협을 느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LIV 골프 런던대회 48명의 면면을 보면 유명 선수 영입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세계랭킹 100위권 밖의 무명 선수들도 상당수 있고, 심지어 아마추어 선수도 포함됐다. 그러나 LIV는 여전히 자신만만하다. 새로운 경쟁 체계에 거액의 돈을 보고 유명 선수들이 속속 합류할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LIV 골프 언제까지 존속할지가 관건
LIV 골프가 첫발을 떼었지만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여부는 미지수다. 선수 수급·스타 플레이어 영입 등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금력이 관건이다. 제 아무리 사우디 국부 펀드가 돈줄이라고 해도 LIV 골프에 천문학적인 돈을 과연 언제까지 쏟아부을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PGA 투어의 많은 선수들이 거액의 상금은 욕심나지만 선뜻 LIV 골프에 합류하지 못하는 이유다. 16일부터 나흘간 열리는 제122회 US오픈 챔피언십에는 자격만 갖추면 LIV 골프에 합류했던 선수 누구나 출전할 수 있다. PGA투어를 고수한 선수들과 LIV 골프행을 택한 선수들이 함께 플레이하면서 어떤 얘기를 나눌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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