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파묻힌 아이’… 가족에 대한 잔인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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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오이디푸스 모티브 샘 셰퍼드 작품 서울 첫 공연

감독 한태숙 “저주받은 인생 야만적인 이야기” 파헤쳐
배우 손병호 “모자 근친상간을 목격하고도 침묵한 아버지”

김경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6-16 14:45:09

서로 서로 범하고 죄로 죄를 벌한다. 아들과 어머니의 충동적인 관계, 인정할 수 없는 아이의 탄생. 집안의 가장 ‘닷지’는 아이를 죽여 뒷마당에 매장한다. 아이를 파묻은 땅은 황폐해졌고 오랜 시간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긴 세월이 지나 비 내리는 어느 날. 손자라고 말하는 ‘빈스’ 그리고 그의 연인 ‘셸리’가 찾아온다. 이들의 방문으로 ‘닷지’는 30년 전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고백하게 된다. 연극 ‘파묻힌 아이’는 무책임한 인간의 야만적인 시간 뒤에 남은 저주받은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경기도예술극단이 주최한 연극 ‘파묻힌 아이’가 첫 공연을 선보였다.

2021년 초연 당시 관객들을 압도하는 완벽한 무대 구현, 극적인 복선이 뒤엉킨 충격적 스토리로 관객과 평단의 화제를 모았던 ‘파묻힌 아이’의 서울 재공연이라 주묵을 받았다.

2017년 타계한 미국의 유명 배우이자 극작가인 샘 셰퍼드의 작품 ‘파묻힌 아이’는 셰퍼드의 ‘가족 3부작’ 중 두 번째 희곡이자 1979년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셰퍼드 커리어의 정점을 이룬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한태숙 감독은 1996년 최종 수정된 번역본을 토대로 시청각적 장치와 표현, 괴이한 시선이 가득한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관객에게 그동안 공연에서 소홀했던 원작의 매력을 전했다.

동시에 가족에 대한 깊은 시선을 보여줬다. 연극에서 목도한 현실은 가족이 가족을 해친 가혹한 사건과 인간임을 포기한 사회의 짐승 같은 단면도이다. 눈감아버리고 싶은 참혹한 오늘을 향해 작품 속 한 가정의 종말을 통해 본 작품은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하는 역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2021년의 ‘파묻힌 아이’는 신화적 요소를 통해 사회적 이슈를 담았다면 올해 공연은 신화적인 해석을 보강하고 제의적인 면을 확대하여 인간의 원형적인 두려움에 대해 설득력을 갖도록 표현했다.

한 감독이 올해 다른 각도로 극을 들여다보고 싶은 장면으로는 기꺼이 제주가 된 큰아들 ‘틸든’의 굿 장면이라고 밝혔다. 스스로 제의적 의식에 빠져드는 심리를 확대하여 미처 자기를 인식할 겨를도 없이 굿판의 제주가 되는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다른 호흡을 느끼도록 한다.

한 감독은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 이 시대에 가족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다”며 “이 작품은 오이디푸스의 신화 이야기에 동시대의 모순된 모자 관계를 투사한 극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미와 자식이 충동적으로 관계하여 파멸에 이르게 되었으면서도 죄에 묻혀 살 수만은 없듯이 온 가족이 죄를 은폐하며 사는 인생의 단면도를 그렸다”며 “늘 그렇지는 않지만 때로 연극이 누군가를 위한 흥미진진한 굿이 될 때 관객은 기꺼이 그 무대에 사로잡히며 함께 나누었던 경험을 잊지 못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두 번째로 무대에 올리는 이 공연에서는 2021년 공연에서 핼리 역을 맡았던 배우 예수정에 이어 배우 성여진이 핼리로 분했다. 감정을 극대화 하면서도 다른 결을 지닌 연기를 눈 여겨 본 한 감독의 선택이다. 더불어 연극계 베테랑 배우 손병호·정지영·한범희·윤재웅·정다운·황성연 배우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 연극 ‘파묻힌 아이’ 2021년 초연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 제공=경기도예술극단]

배우 손병호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닷지’ 역할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그는 “근친상간과 유아살해를 목격하고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30년간 버티고 살아 온 가부장적인 아버지다”며 “극중 ‘닷지’는 ‘고민할 것이 뭐 있냐? 생각해야 할 건 없어. 그냥 묵묵히 해내 가면 돼’라는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화 오이디푸스 모티브를 샘 셰퍼드가 다시 쓴 ‘파묻힌 작품’은 국내 최초로 로열티를 사서 만든 무대”라며 “관객이 이해하기 난해한 부분들이 많지만 정답은 없다.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다”고 덧붙였다.

손병호는 “2021년 초연때보다 스토리는 물론 배우들의 연기력도 더욱 탄탄해졌다”며 “아쉬운 점은 공연 기간이 15일부터 26일까지로 짧다는 점이다. 오늘 객석이 가득 찼는데 남은 공연도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경미 기자 km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