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나이를 물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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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 민주당 세대 논쟁

민주당, 나이를 물을 때가 아니다

노태하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6-20 00:02:30

흔히 어린 아이들끼리 시비가 붙으면 으레 서로 몇 살이냐고 따지듯 묻는다. 여기에는 한 살이라도 더 먹었으면 무조건 형 노릇을 하려 드는 아이들의 태생적 서열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돌이켜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런데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요즘 나이를 둘러싸고 기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른바 ‘97(90년대학번·70년대생)그룹’으로의 세대교체론과 ‘86(80년대 학번·60년대생)그룹’의 용퇴론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대선과 최근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하고 나서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누군가는 당을 다시 맡아 재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 같은 상황논리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민주당내 ‘세대’ 논쟁이다.

‘97그룹’ 세대교체론과 ‘86그룹’ 용퇴론은 요컨대 86그룹은 물러나고 97그룹이 당을 맡아야 한다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이 같은 ‘세대’ 논쟁은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86용퇴론을 언급하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박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6‧1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당 쇄신을 주문하면서 86용퇴론을 화두로 꺼내들었다. 그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586 정치인의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며 “586의 사명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이 땅에 정착시키는 것이었는데 이제 그 역할을 거의 완수했다. 586의 남은 역할은 2030 청년들이 이런 이슈를 해결하고 젊은 민주당을 만들도록 길을 열어 두는 것”이라고 쟁점에 불을 지폈다.

박 전 위원장의 86용퇴론은 민주당 내 많은 86그룹 정치인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당시 박 전 위원장과 함께 공동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윤호중 의원을 비롯해 박홍근 원내대표, 김민석 의원 등이 특히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비대위 비공개 회의에서는 고성까지 오고 간 것으로 전해지는 등 86그룹의 거센 반발에 결국 스물여섯 살의 박 전 비대위원장은 SNS를 통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까지 해야만 했다.

이후 6·1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17곳 중 12곳을 국민의힘에 내주면서 민주당은 뼈아픈 패배를 맛봐야 했다. 이후 다시금 당내에서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잠시 수면 하에 가라앉았던 ‘세대’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97그룹 세대교체론이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은 강원지사 선거에서 패배한 이광재 전 의원이었다.

이 전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586세대(이재명·전해철·홍영표)의 8월 전당대회 당대표 불출마를 주장하며, 70~80년대생들이 전면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의 발언이 나온 이후 당내에서 잇따라 70년대생으로의 세대교체론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몇 년도에 태어났느냐를 놓고 용퇴론이 고개를 들면서 갈등을 반복하던 와중에 결국 당내에서 쓴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이러한 논쟁에 일침을 가하고 나선 것이다.

정 의원은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당내 세대교체론에 대해 “몇년대 생은 안 되고 몇년 생들이 해야 한다. 몇년대에 태어난 것이 죄가 되기도 하고 추대와 추앙의 대상이 되는가. 전라도 사람은 안 된다, 전라도 사람은 된다. 경상도 사람은 안 된다, 경상도 사람은 된다. 이런 논리와 뭐가 다른가. 일반화에 대한 오류”라고 일갈했다.

민주당이 잇달아 선거 패배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 당 수뇌부나 책임자들의 나이 탓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쇄신을 위해 당내에서 주고받아야 할 논의의 쟁점도 아이들 싸움처럼 나이를 들먹이며 ‘몇 살부터는 빠지고 몇 살부터 당을 맡아라’는 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민주당은 단순히 나이가 아니라 공정과 정의라는 시대정신을 살리고 그것을 구현하려는 이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더큰 역할을 부여할 수 있는 체제를 시급히 갖춰야 할 것이다. 그 같은 풍토를 만들지 못한다면 1년9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4·10 총선에서 또 한번 패배의 쓴 잔을 들이켜야 할 지 모른다.

노태하 기자 thnoh@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