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 금산분리 완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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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금산분리 규제 완화 추진

윤승준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6-24 00:52:30

“외국 금융사들은 할 수 있는데 우리 금융사들은 못하는 것, 빅테크는 하는데 기존 금융사는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을 따져 타당하지 않은 규제는 다 풀겠다. 필요하다면 금산분리, 전업주의 등 기본적인 원칙까지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고 그것까지 건드리겠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내정자가 7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케케묵은 금산분리를 지적하며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규제 완화를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금융권이 크게 술렁였음은 물론이다. 40년 넘게 성장에 발목을 잡은 금산분리라는 족쇄를 떨쳐버리는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한층 부풀어오르기도 했다.

금산분리란 한마디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서로의 업종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원칙이다. 기업과 은행이 결합 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은산분리’라 불리기도 한다.

1982년에 대기업 또는 재벌 총수가 금융사를 개인금고처럼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이 원칙에 따라 기업은 은행의 주식을 4% 이상(의결권 없는 주식은 10%) 보유하지 못하고 은행의 경우엔 기업의 주식을 15% 이상 보유하는 것이 금지된다.

그동안 ‘금산분리 규제 완화’는 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요구해왔다. 다만 최근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은행도 금산분리 완화를 외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 등 산업자본에서 파생된 새로운 업종이 등장해 은행업 영역을 조금씩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수신업무를 수행함에도 그에 준하는 규제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은행만 촘촘한 규제에 묶여 산업자본 영역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현재 은행이 자회사로 둘 수 있는 업종은 은행업, 금융투자업, 보험업, 상호저축은행업무, 여신금융업무, 신용정보업, 채권매입업 등 15개로 제한된다. 모두 금융 관련 업종이다. 비금융업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은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 샌드박스)’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특례 기간이 최대 5년 6개월(기본 2년)로 짧아 경쟁력을 키우기 부족하다는 평가다.

반면 산업자본 가운데 IT기업은 특례 적용으로 비교적 손쉽게 금융업에 진출한다.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최대 34%까지 보유할 수 있다. 카카오의 카카오뱅크,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뱅크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의 4분의 1 비용으로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할 수 있고 건전성 관리도 은행보다 느슨하다. 최근에는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율) 규제를 은행과 동일하게 적용받으면서 기업대출을 늘릴 때 확보해야 할 자금 비중도 줄어들었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도 문제지만 산업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빅블러’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금산분리 완화는 필요하다. 금융만 하다가는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금융·비금융이 융·복합된 서비스를 선점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으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이미 은행은 고객의 결제 데이터, 자산 데이터 등을 보유해 이를 비금융업에 활용하면 신사업을 충분히 개척할 수 있다. IT기업 이외 산업자본도 마찬가지다. 캐시카우(현금창출원) 구실을 하는 금융사를 계열사를 두며 새 수익원을 발굴할 수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는 과거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아니다(Banking is necessary, banks are not)’라고 말했다. 아마 빅블러 시대를 미리 예견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시대는 점차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는 없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빅블러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그 시작은 금산분리 규제 완화다.

윤승준 기자 sjyoo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