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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국방력에 공백이 생긴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 구매에 적극 나섬에 따라 한국 방산업계가 막대한 실적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폴란드는 이후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군비 확장을 선언한 상태여서 대규모 계약이 예상된다. 이와 함께 유럽 국가들의 국방력 수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 폴란드를 필두로 유럽시장의 문이 활짝 열릴 것이라는 기대섞인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폴란드 국방장관·평가단 한국 방문… 탱크·장갑차·자주포 등 구매 의사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은 5월29일부터 6월1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방산업체 등을 방문했다. 브와슈차크 장관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만나 양국 간 방산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전차, 장갑차, K4 고속유탄기관총 등의 무기 수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폴란드 육군·공군 평가단 20여명은 지난달 6일부터 10일까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와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을 방문해 제품을 점검하고 수출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에 무기 수출 계약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고, 브와슈차크 장관은 폴란드 전군 지휘부 회의에서 “한국의 성능이 입증된 보병전투장갑차, 자주포, K2 탱크 등을 살 것”이라고 언급해 이러한 관측에 힘을 보탰다.
실제로 현대로템은 지난달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로사토리(EuroSatory) 국제방산전시회’에서 폴란드 국영 방위산업체인 PGZ와 폴란드 육군이 사용하게 될 전차·장갑차 공동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폴란드가 우리나라 무기를 대량으로 구입하려고 하는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와 근접한 지정학적 위치상 국방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나라다. 직접적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은 월경지(본토와 떨어와 떨어져 다른 나라의 영토에 둘러싸인 지역)인 칼리닌그라드뿐이지만 폴란드와 인접해 있는 벨라루스가 대표적인 친러 국가여서 사실상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 올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국방력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며 폴란드 정부는 군비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폴란드는 2024년까지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폴란드군의 규모 역시 현재 14만명에서 30만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지원하며 독일 정부로부터 레오파드 전차를 제공받기로 했지만 협상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독일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폴란드가 옛 소련제 전투기인 MiG-29를 우크라이나로 보낼 테니 구형 F-16 C/D 전투기를 보내달라고 미국에 요청한 건도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폴란드가 무기 구매를 진행할 새로운 파트너로 한국을 선택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한국 방위산업 폭발적 성장… 폴란드 넘어 유럽 시장 날개 다나
군비를 대대적으로 증강하는 폴란드가 한국 무기를 주목하는 것은 한국 방위산업에도 긍정적인 소식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국내 방위산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전 세계적인 군비 증강 추세에 힘입어 더욱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기술품질원 부설 기관인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발간한 ‘2021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한국의 2016~2020년 무기 수출은 2011~2015년 대비 210%나 급증했다. 이는 전 세계 9위 수준이며 전 세계 수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9%에서 2.7%로 올랐다. 지난해 무기 수출 판매액은 약 70억달러(한화 약 9조원)로 추정된다.
올해 초 LIG넥스원, 한화시스템, 한화디펜스가 아랍에미리트와 4조원대의 한국형 패트리어트 미사일 체계인 ‘천궁-Ⅱ’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2월에는 한화디펜스가 이집트와 2조원 규모의 자주포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대형 계약 소식이 이어지며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올해 방산 수출 규모가 100억달러를 넘길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가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기 때문에 (해외에서) 우리 무기가 좋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며 “최근의 성장세에는 이런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브와슈차크 장관이 언급한 무기를 살펴보면 현대로템이 생산하는 K2 흑표 전차는 폴란드의 차세대 전차 사업에서 독일의 레오파르트2 전차와 경쟁하고 있다. 폴란드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T-72 전차 200대를 우크라이나에 보냈기 때문에 전력 보강이 시급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MOU가 체결되자 폴란드가 K2 흑표전차의 폴란드 버전인 K2PL 전차 180대를 구입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로템은 공시를 통해 협의가 진행 중이며 아직까지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한화디펜스의 AS-21 레드백 장갑차도 폴란드 정부의 눈에 든 것으로 알려졌다. 레드백 장갑차는 지난달 최초로 공개됐으며 호주의 차세대 장갑차 사업에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폴란드는 ‘보르숙’ 장갑차를 자체적으로 개발했으나 늘어나는 수요를 자체 생산으로 맞추기 힘들어져 레드백 구매를 통한 빠른 물량 확보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한화디펜스가 생산하는 ‘K9 자주포’의 경우 이미 폴란드의 AHS 크랩 자주포가 K9 자주포 차체를 사용 중이다. ‘K9 자주포’는 한국 방산 산업의 대표적인 ‘효자 상품’으로 주변 국가인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에도 수출된 바 있다.
폴란드는 최근 우크라이나에 AHS 크랩 자주포 18대를 지원했고, 추가로 60대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K9의 차체만 사용했다고 하나 이미 폴란드에 익숙한 무기체계이고 무려 78대를 우크라이나로 보내며 전력 공백이 발생한 만큼 무기 도입이 이뤄질 경우 물량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폴란드 외의 EU 국가들도 국방비를 확대하고 있는 만큼 유럽 시장 진출에도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이탈리아, 덴마크,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 스웨덴 등은 잇달아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2%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폴란드와의 무기 수출 계약이 단건 계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방산 산업의 영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폴란드가 다른 유럽 국가들이 한국 무기를 도입하는 데 있어 테스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진기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는 “우리나라의 무기 체계는 미국 무기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데 좋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국보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며 “미국과 영역이 겹치지 않는 영역이나 상대적으로 예산이 부족한 나라에 수출하는 경우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무기의 문제점이 드러나며 과거 러시아제 무기를 사용하던 동유럽 국가나 구소련 국가들이 미국 무기 체계 기반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 우리나라 방산 업계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아가 NATO 국가도 폴란드의 사례를 보고 한국 무기 도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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