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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치솟는 원자재 가격으로부터 중소기업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인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라 공급비용이 크게 증가한데 비해 납품할 때 가격은 소폭 오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에 중소기업들은 인상된 원자재 가격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연동제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도 일단 중소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연동제 도입을 위한 조직을 구성하고, 하반기부터 시범운영하는 등 본격적인 법제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중견기업과 대기업들의 반발과 함께 오히려 혜택을 보는 중소기업들이 매출 손해 등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타결점을 찾기가 요원한 상태다.
14년째 논의만…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칼 빼든 정부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는 5월 중소제조기업 209개사를 대상으로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위한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2020년 대비 2021년의 원재료 가격은 평균 47.6% 상승한 반면 납품단가의 상승률은 10.2%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이윤이 줄면서 영업이익률도 7%에서 4.7%로 감소했다고 조사 대상 중소기업들은 주장하고 있다.
응답한 중소기업들은 “지속적으로 급등하고 있는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납품단가 연동제가 가장 효과적”이라며 “과반수의 중소기업들이 법제화를 통해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납품단가연동제는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하도급 위탁업체가 원사업자로부터 받는 납품단가도 증액 또는 감액되도록 하는 제도다. 2008년 전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들이닥쳤을 당시 중소기업계의 요구로 도입이 검토됐으나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이 시장원리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사실상 무산됐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혁신의지를 약화시키고 대기업들이 해외부품업체로 눈길을 돌릴 거라는 예측도 연동제 도입에 제동을 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2009년 4월 원자재 가격의 변동으로 하도급대금 조정이 불가피할 때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에게 조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납품단가 조정협의’만 의무화되고 연동제가 법제화되지는 않았다.
이후 14년째 논의만 지속되던 와중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원자재값이 치솟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연동제와 관련한 논의가 재점화됐다. 공급원가가 올라 하도급 대금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납품단가연동제 도입방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지난달 17일 이영 중기부 장관이 주재한 ‘납품단가연동제 TF(테스크포스) 대·중소기업 회의’를 열고, 주은기 삼성전자 부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등 대기업 임원 및 정윤모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 등 중소기업계 주요임원 등 14여명의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부는 납품단가연동제를 정밀하게 설계하기 위한 전문가 참여 TF 회의를 개최하고 납품단가 연동 조항이 포함된 표준약정서와 가이드북을 작성·보급해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는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범운영하고, 연동제를 도입·운영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세부적인 계획도 제시했다. 업계에 따르면 활용도가 높고 공인된 시장 가격이 있는 구리, 알루미늄 등 일부 원자재 품목을 중심으로 시범 운영될 예정이다.
이 장관은 회의에 앞서 “지난 14년간 중소기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납품단가 연동제의 필요성을 제기해왔으나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공전만 해왔다”며 “이제는 함께 상생의 문을 열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대·중견기업 반발… “연동제 도입 시 오히려 중소기업 피해 본다”
하지만 어떤 원자재를 연동 대상으로 선정할지, 납품단가의 인상 비율을 어느 정도로 설정해야 적절한지 등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고, 규모가 큰 사업체들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적절한 타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대 의견을 제시한 박양균 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중견기업은 구조적으로도 하도급 법 상 연동제의 적용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정책의 세부적인 보완사항들을 만지지 않은 채 규제만 하게 된다면 시장에서 의도한 결과가 나올 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이어 “현재 러·우 전쟁 등 예외적인 상황임을 감안할 때 특수한 상황만을 놓고 규제를 만들면 오히려 불확실성을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며 “원청업체와 하청업체의 거래 상 문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사자 간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들은 납품업체 입장에서 연동제가 시행될 경우 원가 절감 유인이 줄어들어 중소기업 혁신에 저해된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원청업체가 비용 절감을 위해 국내 중소기업 대신 해외 업체로 눈길을 돌리게 될 경우 역으로 중소기업의 매출 손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달 2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했다고 가정하고 이를 납품가격에 반영하면 국내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대기업의 수요는 1.45% 감소하고, 해외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수요는 1.2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대기업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이를 중간재화로 사용하는 중소기업의 생산비용도 상승하므로 생산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국내 중소기업 제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재화로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한경연은 정부의 보호와 대기업의 선의가 아닌 경쟁을 통한 중소기업의 혁신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조경엽 하나경연 연구실장은 “‘대·중·소 상생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경쟁이 아닌 정부의 보호와 대기업의 선의만을 기대한다면 글로벌 공급망으로부터의 퇴출은 불가피하다”고 며 “지속적으로 선도기업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을 통한 끊임없는 기술혁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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