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보다 식탁 물가 안정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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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 런치플레이션

임한상 차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6-29 00:02:30

물가 상승세 영향으로 편의점 도시락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편의점 업계는 코로나19 거리 두기 해제 이후 도시락 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런치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는 고물가 상황이 전개되면서 보기 좋게 빗나갔다.

런치플레이션이란 점심을 뜻하는 런치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로 물가 상승으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상징적인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편의점 업계는 외식 물가 상승으로 편의점에서 도시락 식사를 하는 알뜰 고객들 사이에서 도시락과 김밥·샌드위치 등을 할인받을 수 있는 구독 쿠폰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귀띔했다. 4000원 하는 도시락 구독 쿠폰을 사면 20% 할인된 가격에 도시락을 구매할 수 있다.

30일 동안 10회, 하루에 1회를 사용하는 조건이다. 구매 시마다 4000×0.2=800원이 할인되고 여기에 10회를 사용할 수 있으니 총 8000원을 아낄 수 있는 기회다. 이런 편의점 업계의 마케팅으로 한 업체의 5월 구독 쿠폰 사용량은 지난해 동기 대비 무려 68.9%나 증가했다. 이 업체의 회사 주변 편의점의 도시락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1%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컵라면(24.6%)·삼각김밥(28.0%)·김밥(23.7%) 등의 매출도 덩달아 껑충 뛰어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각 편의점은 평균 가격 4500원 이하인 2000원대 도시락 판매를 시도해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한 업체는 유명 요리연구가와 손잡고 2900원짜리 도시락 2종을 출시했다. 대학교 구내식당 메뉴 가격보다 싼 가격이다. 올해 초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의 구내식당 메뉴 가격은 3000~5000원대로 인상된 바 있다.

이 초저가 도시락은 청양 어묵 덮밥과 소시지 김치 덮밥으로 간편식에 사용되는 원재료를 대량 매입해 단가를 낮추고 레시피를 단순화해 조리 공정을 최소화했다. 청양 어묵 덮밥은 햅쌀로 지은 밥 위에 간장소스와 청양고추를 더해 매콤하게 조린 어묵볶음을 올렸다. 반찬은 편의점 도시락의 단골 메뉴인 볶음 김치다. 소시지 김치 덮밥도 돈육 함량이 높은 프리미엄 소시지와 새콤한 김치를 함께 볶아 밥 위에 올린 한 그릇 요리로 구성했다.

또 다른 편의점 업체는 신한금융투자와 손잡고 도시락을 사면 미국 12개 기업의 주식 중 1주를 주는 도시락 상품을 기획해 5월 한 달간 8만여개를 팔았다. 미국 기업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테슬라·마이크로소프트·애플·월트디즈니·나이키·코카콜라 등이다. 점심 한 끼를 도시락으로 때우면서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의 재테크 소비 심리를 절묘하게 자극했다.

고물가 시대를 맞이해 고객 니즈에 부응하기 위한 편의점 업계의 노력은 이처럼 눈부시다. 유통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상품 판매 경쟁이 시작되는 상황에서 고객들에게 초반에 강렬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편의점 업계의 마케팅 전략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증권사 리포트는 편의점 업계를 고물가 시대의 진정한 파이터로 평가하기도 했다.

정부도 이런 편의점 업계의 치열한 마케팅의 세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인플레이션으로 ‘밥상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장포족(장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물가 잡기’ 마케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4인 가구가 지출한 식비(식료품 및 외식비 지출)는 월 평균 106만6902원으로 1년 전(97만2286원)보다 9.7% 증가했다. 식비가 이처럼 급등한 것은 농산물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24일 기준 양파(15kg) 도매가격은 2만2160원으로 1년 전(1만530원)보다 110.4%나 폭등했다. 감자(20kg) 도매가격도 4만480원으로 1년 전(2만3660원)보다 71.1%나 뛰었다. 여름철 대표 채소 열무(4kg) 도매가격 또한 1만3280원으로 1년 전 8384원과 비교해 약 1.6배나 올랐다.

한편 진정한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미국·유럽 등이 30~40년 만에 최고의 물가 상승률을 보이고 있고, 우리도 조만간 6월 또는 7~8월에 6%의 물가 상승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국민적 기대감과 어긋나는 발언을 해 오히려 이목을 끌었다. 어려운 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추 부총리에게 주문하고 싶다. 경제성장은 바라지도 않을 터이니 식탁 물가 안정이라는 한 마리 토끼만은 반드시 잡아 달라고.

임한상 차장대우 hsr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