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만 남은 ‘南北 평화’… 방심하면 또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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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제2 연평도해전 발발 20주년’을 기억하며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7-04 00:02:30

올해는 제2 연평해전 발발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2년 6월29일, 한국과 터키의 월드컵 3·4위 전으로 대한민국이 온통 환호와 함성으로 들떠있을 때였다. 하지만 같은 날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는 남북한 간 목숨을 건 치열한 해전이 펼쳐졌다. 기습 침공을 감행한 것은 북한의 등산곶 684호 함정이었다.

1999년 6월15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벌어진 1차 연평해전 당시 반파돼 퇴각했던 바로 그 배와 같은 기종이었다. 약 30분간 이어진 북한군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한국군은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참수리 357호는 아쉽게도 침몰하고 말았다. 이른바 ‘제2 연평해전’의 발발이었다.

지난 주말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을 전쟁 발발 2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봤다. 이 영화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 젊은이 6명의 마지막 순간이 담겨 있었다. 다만 교전 결과는 화면에서 자막으로 처리됐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전사자를 보내는 영결식에마저 참석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월드컵 결승전(브라질-독일) 경기 관람을 위해 일본 출국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김학순 감독은 130분의 러닝타임 가운데 실제 전투시간 30분을 그대로 필름 위에 되살려 내는 장인정신을 한껏 발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비운의 순간을 기록한 이 영화에는 청각장애를 지닌 어머니를 둔 박동형 병장, 해군 출신의 아버지를 둔 윤영하 대위, 아내를 각별하게 사랑하는 조타장 한상국 하사 등 장병이기 이전의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아들·남편이었던 이들의 정겨운 삶이 곳곳에 녹아 있었다. 참수리호를 향한 북한의 기습 공격만 아니었어도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며 꿋꿋하게 살아 있었을 터이다.

2002년 6월29일 오전 10시 등산곶 684호의 기습 함포 공격을 신호탄으로 불거진 당시 전투에서 우리 장병들은 즉각 대응 사격에 나섰다. 특히 한상국 하사는 조타륜에 손목을 끈으로 묶어 가며 대원들을 안전하게 귀환시키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조정간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M60 기관총으로 응사하던 기관실 엔진담당 서후원 하사가 쓰러졌으며, 발칸포 사수로 활약하던 황도현 하사는 방아쇠를 손에 꼭 쥔 채 전사하고 말았다.

총격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부정장 이희완 중위는 숨진 윤영하 대위를 대신해 지휘권을 인수받은 후 끝까지 공격 명령을 내리는 용맹함을 보였다. 총상으로 손가락을 잃은 기관총 사수는 손바닥으로 총기를 잡고 사격을 계속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국군의 기품을 지켜 냈다. 선혈이 낭자했던 참수리 357호정은 당시의 격전 현장을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은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겠다던 김대중·노무현정부는 이를 ‘서해교전’이라 부르는 데 그쳤다. 이명박정부 들어서야 ‘제2 연평해전’으로 제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북한과의 대화 기조를 이어받은 노무현·문재인정부 때 북한은 핵보유를 선언(2005년)하고 핵실험을 감행(2006년)했다. 북한은 이명박·박근혜정부 때도 2차 핵실험(2009년)을 비롯해 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전(2010년) 등의 크고 작은 도발을 자행했다.

북한은 문재인정부 임기 말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대북제재 속에서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여러 차례 시험 발사했다. 5년을 추진했다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결과적으로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 꼴이 됐다.

북한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정권은 극심한 경제난과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핵무장 국가라는 대외 선전용으로 포장된 공포정치를 통해 3대 세습을 이어가고 있다. 대화를 하자며 손을 내미는 동포에게 총부리와 폭탄으로 대응하는 북한을 상대로 과연 ‘진정한 평화’을 거둘 수 있을 지 우려가 앞설 뿐이다. 돌아오지 않는 6명 의 대한민국 장병을 떠올리며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살아있는 우리가 더욱 배전의 노력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장혜원 정치사회부 차장대우 hyjang@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