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후손은 우리보다 머리가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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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사마에 열광하는 일본 아줌마에게서
국민적 자부심 느끼던 시절은 벗어나자
이제 양면적 세상에서 삶의 지혜 찾아야

이혁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7-05 09:42:34

중국과 사이가 좋았을 때, 일본은 두 명의 중국인을 칭송했다. 한 명은 전설적 총리인 주언라이(周恩來). 그는 일본과 국교 맺을 때 지금도 인용되는 명연설을 했다.

“친구는 고를 수 있어도 이웃은 못 고른다는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중·일 국교 수립에 어려움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양국 사이에는 2000여년의 우호가 있고 반세기의 대립이 있으며 최근 수십 년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우호와 노력이 전쟁을 우정으로 바꿨습니다.”

또 한 명은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鄧小平). 문화혁명의 만행에서 겨우 벗어난 덩샤오핑은 외국의 과학기술과 발전 노하우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둘러 인재들을 외국에 내보냈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급속히 부흥한 일본을 주목했다. 아예 1978년 10월22일 직접 일본을 방문한다. 고속열차 신칸센을 타고 일본 전역을 견학하며 정신없이 발전 노하우를 흡수했다. 그런 덩샤오핑에게 기자가 방일 이유를 물었다.

“이 나라에 봉래(蓬莱)라는 불로장생의 약이 있다고 해서 구하러 왔습니다. 혹시 그 약이 없다면 과학기술을 발전시킨 일본의 선진 경험을 갖고 돌아갈까 합니다.”

민감한 질문도 나왔다. 중·일 간 독도 문제라 할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였다.

“우리 세대에선 합의가 이뤄지지 않겠지요. 하지만 다음 세대에는 해결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세대보다 머리가 좋으니까요. 우리 후손들은 분명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해결 방안을 찾아낼 겁니다.”

경제발전을 서둘러야 한다는 다급함이 댜오위다오 문제를 잠시 옆으로 치워 놓게 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갈등으로만 치닫는 한·일관계를 보면 부러운 얘기다. 죽창가 부르며 싸우기만 하다 보니 ‘긴장 모드’에 물들어 있는 사람이 많다.

지난달 나토 정상회의 기사가 쏟아졌는데 허다한 기사 중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먼저 윤석열 대통령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는 부분을 읽고서야 “우리가 이겼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분들이 있을 것이다. “한·일 간 현안을 조속히 해결해”(윤 대통령) “한·일관계가 더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기시다 총리) 같은 내용보다 일본 총리가 먼저 ‘무릎 꿇고’ 찾아왔다며 이 점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이건 좀 이상한 것 같다. 세상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승자와 패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에는 최소한 양면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일 중 하나가 ‘욘사마’, 즉 배용준의 일본 방문이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에서 욘사마 인기가 폭발했을 때인 2004년 11월, 그는 일본에 갔고 일본 공항은 울며불며 욘사마 한번 보려는 일본 아줌마들로 난리가 났다. 그걸 본 많은 한국인들은 자부심을 느꼈다. 일본을 누른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서 “일본 아줌마들,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배용준을 통해 ‘국민적 자부심’을 느꼈다면, 일본 아줌마들은 배용준을 통해 ‘꿈결 같은 기쁨’을 누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국민적 자부심과 개인적 희열.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꼭 순위를 매길 일은 아닌 것 같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일본 중년층 이상은 깨끗하고 친절한 일본을 외국 관광객에게 소개하며 국민적 자부심을 느낀다. 외국 관광객인 우리는, 일본의 깨끗함과 친절함을 체험하며 개인적 즐거움을 누린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굳이 승자와 패자를 가르지 않더라도.

요즘 일고 있는 비자 문제도 그렇다. 전에는 무비자였는데 코로나가 창궐하자 일본인 입국을 막았다. 그래서 일본인의 한국 방문은 2019년 327만명에서 작년 1만5000명으로 급감했다. 지난달부터 우리 정부가 다시 문을 열고 관광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하지만 도쿄총영사관이 발급 가능한 관광비자는 하루 150명. 그래서 비자 받느라 난리다. 하지만 전처럼 무비자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괜히 일본보다 먼저 무비자 재개했다가 ‘대일 굴욕 외교’란 비난을 들을까 걱정돼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먼저 무비자 선물을 주는, 통 큰 가슴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 일에는 양면이 있고, 무비자는 어차피 우리 내수 관광에 도움이 되니 말이다.

다시 덩샤오핑 이야기. 그 역시 매우 양면적이었다. 아들을 장애인으로 만든 문화혁명에 대해서조차 “나쁜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좋은 일이었다”고 했다. 덩샤오핑이 일본에 양면적이었던 이유는 두 가지 같다. 첫째 역사 바로 세우기가 중요하지만 경제 발전도 몹시 급했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 바로 세우기가 중요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사이가 원만해지면 엄청 좋은 일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한테 2022년의 한·일 어른들을 위한 조언을 구하면 “두 선생들은 복잡한 양국 문제를 풀어 내기 어려울 것 같네요. 후손들보다 머리가 안 좋으니 말이에요”란 말을 들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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