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성왕의 무덤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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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성왕의 무덤을 찾아서

실성왕의 무덤은 경주 낭산에 소재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7-10 11:47:01

실성왕은 신라 19대 눌지왕의 반정(군사쿠데타)에 의해 실각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는 실성왕의 무덤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다. 그래서 고고학적 판단에 의거 경주 대릉원의 황남대총을 지목하기도 한다. 황남대총은 경주 일원의 신라고분 중에서 5세기에 축조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을 대표하는 무덤으로 가장 규모가 크며 두 개의 무덤을 결합한 표주박형(표형)이다. 남분은 왕, 북분은 왕후(왕비)의 무덤이다.

황남대총 남분의 주인공을 두고 내물왕, 실성왕, 눌지왕, 자비왕 등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하나 명확한 증거는 없다. 특히 실성왕의 무덤으로 보는 경우,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으면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의 상징인 연화문 도상(圖像)과 유물, 그리고 고구려 계통의 부장품이 다량 출토된 점을 근거로 든다. 특히 눌지왕이 왕위계승의 정통성 확보와 반정에 따른 민심의 진정 등을 목적으로 봉분 외형을 크게 만들어 줬을 것이라는 다소 의견이 반영된 해석도 들어있다.

「신라사초」의 실성왕 죽음

그런데 「신라사초」에 실성왕의 무덤에 대한 기록이 명확히 나온다. <눌지천왕기>이다. ‘원년(417년) 정사 5월, 해간, 하기 등이 성문을 열고서 왕(눌지왕)을 맞아들이자, 이사금(실성왕)은 낭산의 선대로 도망쳐 들어갔다. 왕이 구음, 호원 등에게 명하여 나아가 낭산을 포위하자 이사금은 성위로 나와 대왕 보기를 원하며 화해를 청했다. 왕이 허락하지 않자 이사금이 마침내 성루 아래로 떨어져서 붕하니 곧 중오일(5월 5일)이다(五月海干河期等開城門而納王尼師今走入狼山仙臺王命垢音好原等進圍狼山尼師今出城上願見大王和解王不許尼師今乃墮樓下而崩卽重五日也).’

실성왕은 서기 417년 5월5일 경주 낭산의 선대(仙臺·누각)에서 성루 아래로 몸을 던져 사망했다. 기록은 계속 이어진다. ‘9월, (왕이) 실성이사금을 낭산에 장사지내라고 명했다.… 10월, 사류(실성왕 딸)를 낭산주로 삼아 실성릉을 지키게 하였다(九月命葬實聖尼師今于狼山 … 十月以舍留爲狼山主守實聖陵也).’ 눌지왕은 실성왕이 사망한 낭산에 실성왕을 장사지내며, 실성왕의 딸로 하여금 실성왕릉을 지키게 했다. 실성왕은 왕가의 묘역인 대릉원이 아닌 낭산의 산중에 묻혔다.

경주 낭산에 묻힌 실성왕

낭산은 경주 월성 동쪽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남북으로 길게 누에고치처럼 누워 남쪽과 북쪽에 봉우리를 이루며, 허리는 잘록하여 야산처럼 낮고 부드러운 능선을 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신라의 진산(鎭山)으로 기록된 낭산에는 현재 사천왕사지, 능지탑, 마애불, 황복사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남쪽 봉우리 정상부에는 “내가 죽으면 도리천 중에 묻어라”는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조성된 선덕여왕릉이 소재하고 있다.

실성왕이 묻힌 낭산은 실성왕 자신과도 관계가 깊다. 「삼국사기」에는 실성왕이 낭산에 구름이 일어 바라보니 누각과 같고 향기가 가득해 ‘신선이 내려와 노는 곳(仙靈降遊)’이라 여겨 벌목을 중지시킨 내용이 있다. 또한 「신라사초」에는 실성왕이 낭산에 선대(누각)를 신축하고 선대 바깥쪽에 작은 성을 쌓았다(狼山仙臺成命築小城于其外)는 기록도 나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실성왕은 가장 아끼고 정성을 들여 만든 자신의 공간에서 목숨을 잃는다.

현재 낭산에서 실성왕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또한 실성왕과 연관된 전설마저도 전해져오는 것이 없다. 아마도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모두 지워졌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고고학이 좀 더 관심을 갖고 낭산을 정밀 조사하길 기대해 본다. 그래서 실성왕릉을 비롯해 실성왕이 쌓은 성의 흔적과 선대의 주춧돌이라도 찾아내 복원한다면 실성왕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실성왕은 김씨왕조의 정통이자 흉노계의 적자이다. 그러나 지나친 복수심으로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왕통마저 선비계인 눌지왕에게 넘겨주고 만다. 실성왕은 낭산에 묻힌 불운한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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