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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이념 지형을 대표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정치계·언론계·학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여과 없이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가 과연 적절한지 의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進步)라 칭해지는 세력의 원조는 이른바 운동권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변혁시킨다는 미명 하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식 주체혁명노선이나 마르크스·레닌식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지향하는 세력이다. 이른바 종북·좌파세력이다. 이들은 진보라는 용어가 갖는 진취적인 의미 때문에 일반 대중이 호감을 갖고 있음을 간파하고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진보사회’, 그들이 신봉하는 사상을 ‘진보사상’, 이를 지향하는 세력을 ‘진보인사’ ‘진보진영’ 등으로 지칭하며 사회주의 지향 활동을 정당화하였다.
특히 운동권은 6·25 전쟁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에 사회주의(궁극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저항감이 큰 것을 감안하여 그들의 지향을 그럴듯하게 민중민주주의나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위장하였다. 바로 용어혼란전술을 구사한 것이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자신들이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는 양심적인 민주화운동 세력인양 행세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당시 군사독재 상황이 이들의 활동에 정당성을 주었고 건전 시민운동권까지 가세했다. 그 결과 2000년대에 우리 사회 내에 이들을 추종하거나 옹호하는 세력이 ‘진보’라는 거대한 정치세력군(群)으로 형성되었다.
진보란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상황이나 사물이 좀 더 발달되고 나아지는 상태’를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진보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발전과 번영을 지향하고 추구하는 사상과 세력이지, 북한의 주체혁명노선이나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사상과 세력은 결코 아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진보라고 불리는 세력은 대다수 ‘사이비 진보’ ‘짝퉁(가짜) 진보’다.
인류사에서 정치적 의미의 진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계몽주의를 통해서다. 계몽주의는 운명론과 종말론적 역사관이 지배적이었던 고대의 세계관과 그리스도교의 종교 관념에 대항하여 자연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것을 중시하면서 생겨났다. 계몽주의는 구 질서를 해체한 르네상스, 종교개혁 사상을 이어받아 이성을 원리로 하여 인간의 자유와 평등성을 중시하며 이를 사회적으로 보급하고 각성시키는 사상운동인데, 당시 이를 ‘진보 사상’이라고 칭했다.
한편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 시각에 입각하여 기존 자본주의 이념과 체제를 노동자 계급을 억압·착취하는 반동적 체제라 매도하며 공산주의 사상과 공산주의 운동을 진보라고 역설했다. 북한 및 국내 종북·좌파세력들이 신봉하는 진보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역사발전 5단계설’에 입각하여 인류 사회가 원시공동사회·고대 노예사회·중세 봉건사회·근세 자본주의사회·공산주의사회로 발전해 나간다고 주장한다.
즉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하고 인류 최후에 이상사회인 공산주의사회가 도래한다고 선전한다. 따라서 현 자본주의체제를 고수하면 ‘반동’이 되고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향하면 역사발전의 필연적 법칙에 순응하기 때문에 ‘진보’가 된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이 신봉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진보사상, 자파세력들을 진보진영이라고 칭하고 있다.
북한도 조선말대사전(1992년판)에서 진보를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새것을 지향하여 높은 수준의 상태로 발전하여 나가는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70여년간 사회주의를 실험해온 소련과 동구권 몰락에서 확인된 것처럼 사회주의는 인류문명사에 각종 해악을 끼친 ‘역사의 퇴보’이지 결코 ‘진보’가 아니다.
반면, 보수(保守)란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보존하여 지키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기존 이념이나 질서와 체제를 수호하며 지지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보수와 반대되는 개념은 개혁과 혁신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진정한 보수는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며 유지하려는 경향을 의미하는 건전한 개념이다.
그러나 북한 및 종북·좌파 세력은 자신들을 진보라고 칭하고 자유민주 수호세력을 보수반동세력·수구꼴통세력으로 매도하고 있다. 이들은 ‘진보=새것=진취적인 것’, ‘보수=낡은 것=파괴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왜곡·선동적 등식을 세우며 보수 세력의 타도와 사회주의 혁명을 정당화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남북 대결의 긴장이 고조되었던 시절,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정권안보·부정부패·정경유착 등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다수의 건전 보수 세력까지를 ‘썩은 보수’로 매도되어 청산해야 할 세력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서방세계에서 사회과학적으로 합의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을 보면, 보수나 진보나 다 같이 기존 질서나 체제를 인정하는 이념이다. 보수는 사회 전통과 질서를 중시하다 보니 개혁의 범위가 좁고 개혁 속도가 느릴 뿐 사회개혁을 거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면 진보는 사회개혁을 중시하다 보니 개혁의 범위가 넓고 개혁 속도가 빠르다. 진정한 의미의 진보와 보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헌정 질서와 체제를 유지·발전시키는 원동력이며 상호보완적 개념이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종북·좌파세력을 아무런 검증 없이 ‘진보’라고 부르는 것은 명백한 현대 문명사의 왜곡이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망국적 행위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정치이념 구도를 ‘보수 대 진보’의 틀로 분류하는 것은 북한 및 종북·좌파세력의 용어혼란 전술에 놀아나는 것이다. 종북·좌파 세력은 일관되게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이념 지형을 ‘자유민주주의’ 대 ‘민중민주주의’로 분류할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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