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여자 <19회> 한밤중의 비명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이경희 장편소설]

끔찍한 비명이 아파트 복도를 찢어놓았다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7-22 10:10:00

수빈은 선우에게 매달리다시피 다섯 명 친구들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내 이름으로 분양받은 첫 아파트야, 처음 가져본 우리 집이야. 늦은 저녁 수빈의 초대는 선우를 난감하게 했다.

잠깐 와인 한 잔만 마시고 가지 뭐, 나정과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화영은 수빈을 챙겼다. 선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화영이 프런트에 전화한 지 채 20분이 되지 않아 밴 한 대가 주차장으로 날아왔다. 차에는 와인과 음식이 담긴 아이스 캐리어가 실려 있었다. Y자 들어간 곳이 가끔 편할 때도 있어, 선우를 향해 화영이 활짝 웃었다.

선명한 이목구비에 뽀얀 피부를 가진 수빈은, 귀티 나는 외모와는 달리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생을 했었다. 친구들은 수빈의 자취생활이 불편하지 않게 학창 시절 내내 노력했었다.

수빈의 집은 그의 하얀 피부처럼 정갈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선우 등이 아이스 캐리어를 열어 음식을 차리는 동안 해원은 집 구경을 하는 듯 이 방 저 방 기웃거렸다.

해원이 서재로 들어가자 수빈은 음식을 챙기다 말고 얼른 서재로 따라 들어갔다. 긴히 할 말이 있다던 수빈은 여태 아무 말이 없었다. 문이 열린 서재로 선우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해원은 뭔가를 찾는 듯 수빈의 사진 수십 장을 들고는 이리저리 들춰 보느라 수빈과 선우가 들어오는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사진은 왜 봐? 수빈의 말에 놀랐는지 해원은 들고 있던 사진을 바닥으로 쏟아버렸다. 그러곤 얼른 한 장을 주워들었다. 남녀 대학생 20명 정도가 모여 있는 사진이었다. 특이한 건 가위로 오려낸 듯 몇 사람 얼굴은 뚫려있고 그 옆의 수빈과 해원은 손을 꼭 잡은 채 서 있는 사진이었다.

바닥에 흩어진 사진들은 대부분 찢겨 있거나 얼굴 없는 것들이었다. 그 사진 중 풍경이 익숙한 몇 장이 선우 눈에 들어왔다. 한 장은 미국 컬럼비아대학 도서관 긴 계단이 배경이었고, 다른 한 장은 컬럼비아대학 교정에 세워진 로뎅 동상 앞이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남자로 보이지만 두 장 다 얼굴은 도려내고 없었다.

아, 이거 내 꺼 아니야. 선물 받은 사진이야. 수빈은 민망한 표정으로 선우 손에 든 사진을 빼앗아 들었다. 사진은 엄연히 사생활 영역이었다. 선우는 수빈이 불편할까 조용히 서재를 나왔다.

“그때 아빠한테 받은 게 세 배 뛰었다던데 그걸로 모자라니? 그래서 하필 우리 호텔에서 나를 창피를 줘?”

화영이 나정을 노려보고 있었다.

“돈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어. 너 같은 돌대가리는 절대.”

나정의 소리를 자르며 누군가 뒤에서 와락 선우를 밀쳤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밖으로 튀어 나갔다. 해원이었다. 그 뒤를 수빈이 쏜살같이 따라 나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밀린 선우가 채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아파트 복도를 찢어놓았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이경희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