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박수칠 때 떠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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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 전반기까지 타격 1위 맹타
추신수 손에 이끌려 10살 때 야구 입문
고인 된 할머니 효도 못한 게 평생의 한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7-21 09:20:16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략)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경남 진주 태생의 시인 이형기는 시 ‘낙화(落花)’를 통해 ‘박수칠 때 떠나라’를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 물러날 시기를 잘 정해 물러나면 박수를 받기 마련이지만 노욕으로 시기를 놓쳐 몰락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칫 비판과 눈총의 대상이 되곤 한다.

‘조선의 4번 타자’라고 불리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가 이 말에 딱 들어 맞는 것 같다. 30여년 끼어 온 글로브를 올시즌을 끝으로 벗겠다고 선언한 뒤 연일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전성기에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어서다. 40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좌판상 할머니가 어렵게 키워 내

이대호는 한국·미국·일본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거포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야구를 한 선수도 드물다. 야구 하나로 큰 부를 형성한 그는 인간승리의 표본이라고 할 정도다. 세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재가하는 바람에 형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시장 좌판에서 김치와 된장 등을 팔며 형제를 어렵게 키웠고, 이대호가 고교 시절에 고인이 됐다. 이대호는 할머니에게 제대로 된 효도를 못한 게 한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이대호가 야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절친인 SSG 랜더스의 강타자 추신수 손에 이끌려서다. 야구를 하기 위해 부산 수영초등학교로 전학 온 추신수는 같은 반 친구로 덩치가 큰 이대호를 감독에게 추천했고 같이 야구를 하자고 적극 설득했다. 당시 부산의 초등학생들에게 야구는 일종의 종교 같았지만 이대호에게는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나무였다. 야구부에 들어가려면 매달 몇십만 원의 훈련비를 내야 했지만 이대호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중학교 시절 감독 집에서 더부살이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듯 이대호는 주위의 도움으로 운 좋게 야구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의 팔자가 바뀌게 된 사연이었다. 이대호는 중학교 시절엔 감독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이대호는 경남고로, 추신수는 부산고로 각각 진학해 부산을 대표하는 공립학교 간에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었지만 둘의 우정은 지금까지도 돈독하다. 고교 시절까지 둘 다 투수였으며, 2010년 애드먼턴에서 열린 청소년(18세 이하)야구선수권대회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다. 당시 대표선수 18명 가운데 이 둘만이 현역 선수로 남아 있다.

좌완 강속구 투수 추신수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시애틀 마리너스의 러브콜을 받고 미국으로 떠났지만 이대호는 롯데에 입단했다. 이대호는 어깨 부상 탓으로 타자로 전향을 했고, 결국 이게 신의 한 수가 되어 KBO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거듭날 수 있었다.

공격 7관왕은 ‘언터쳐블’ 기록

194cm에 120kg에 육박하는 거구의 이대호는 2006년부터 타격에 두각을 드러내 타율·안타·홈런·장타율 부문에서 1위를 해 KBO 역대 2번째 타자 부문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했고, 2010년엔 도루를 제외한 공격 7개 부문(타율·안타·홈런·타점·득점·장타율·출루율)에서 1위를 기록하며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타격 7관왕을 차지하며 MVP를 수상했다. 타격 7관왕 기록은 아직 언터처블이다.

국내 프로 야구를 평정한 이대호는 일본 프로야구로 눈을 돌린다. 오릭스 버펄로스 유니폼을 입은 이대호는 정규 시즌 144경기에 모두 4번 타자로 출전했고 24홈런을 쳐 냈다. 오릭스에서 2년간 뛴 이대호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해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동시에 한국인 최초로 일본 시리즈 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 구단의 파격적인 조건을 뿌리치고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려고 MLB에 도전한 이대호였다.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한 시즌 동안 14홈런을 기록한 뒤 KBO 리그로 돌아온 그가 6년 동안 식을 줄 모르는 활약을 보이는 것은 결코 새삼스럽지가 않다. 거구이기에 도루 부문을 빼고는 큰 약점이 없는 이대호다.

할머니께 효도하고파 선행 베풀어

독실한 불교 신자인 이대호는 2006년부터 매년 겨울 부산시 내 독거 노인들에게 연탄을 배달하고 요양원을 찾아 목욕 봉사를 하는 따뜻한 마음을 과시했다. 자신을 키워 준 할머니를 생각해서다. 또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에게는 매달 장학금을 주는 선행을 베풀고 있다.

이대호가 14일 전반기가 끝난 현재 타율 1위(0.341)로 맹활약 하고 있기에 은퇴 선언을 번복하라는 팬들의 성화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올스타전 홈런레이스에서 우승했다. 우리는 아직 '전설'을 떠나 보낼 준비가 안 됐다. 그렇지만 고집 센 이대호가 은퇴를 번복할 리가 없다. 웬만한 걸 다 이뤘지만 소속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못 이룬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가 은퇴 후에 지도자로 나설지 정해진 것은 없다. 그렇지만 할머니를 고마워하고 그리워하는 이대호의 자선은 쭉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할머니에게 효도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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