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여자 <27회> 그날의 기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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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그가 필요했다, 수빈의 삶에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03 09:20:16

제이슨이 너 좋아하나 봐, 계속 너만 쳐다 봐. 청소일을 마치고 나오며 해원이 수빈의 허리를 쿡 찔렀다. 수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빈 역시 제이슨에게 마음이 흠뻑 다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부동산 재벌이라더라, 부모님이 변호사라더라, 친구들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거기다 미국 유명대학 법대생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법학박사까지 미국에서 할 공부가 많이 남았고, 나이가 또래보다 많다는 것도 수빈에겐 솔깃했다.

수빈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제이슨이 수빈을 빤히 보고 있었다. 수빈은 환하게 미소 짓고는 바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긴 머리가 사르르 쏟아져 내렸다. 그가 필요했다, 수빈의 삶에. 수빈은 그를 자기 삶에 끌어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드디어 농활 마지막 날, 수빈과 해원은 청소도구를 씻으러 수돗가를 찾았다. 여느 때처럼 패거리가 집적대기 시작했다. 수빈은 막대 걸레를 빨며 옆의 한 녀석에서 슬쩍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다른 한 녀석이 해원의 팔을 건들었다. 기겁을 한 해원은 어맛, 소리를 지르고는 달아나버렸다. 죽겠다는 듯이 웃어 재끼는 깡패들.

수빈도 서둘러 씻은 것들을 모아들고 뒷마당 청소도구함으로 향했다. 내가 들어줄 게, 깡패 하나가 수빈이 든 것을 빼앗아 들고 뒷마당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우리, 내일 서울로 돌아가. 따라가며 수빈이 슬쩍 운을 뗐다. 오늘 밤 니들끼리 파티한다며? 나하고는 안 할래? 깡패가 수빈을 돌아보며 쓱 웃었다. 어디? 숙소에서? 수빈의 말에 깡패 눈이 휘둥그레졌다. 숙소 가도 돼? 수빈은 말없이 청소도구를 받아 함에 챙겨 넣었다.

학생들은 마을회관을 숙소로 쓰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작은 사랑방에 2~3명씩 그리고 남학생들은 마당 건너 회의실로 쓰는 큰 방에 여러 명씩 무리 지어 쓰고 있었다.

수빈은 반드시 제이슨을 잡아야 했다. 깡패에게 어느 정도 빌미를 줬으니 그날 밤 수빈의 방으로 찾아올 게 뻔했다. 그들이 들이닥치면 혼비백산 놀란 모습으로 제이슨의 숙소에 뛰어들면 되는 것이었다, 예쁜 잠옷을 입은 채.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던 수빈은 일찍 잠이 들어버렸고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을 땐 이미 해원은 옷이 찢긴 채 한 놈과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낮의 그 녀석은 수빈 옆에 누웠다 벌떡 일어나더니 빠르게 밖으로 나가버렸다.

딱 그 순간이 울면서 제이슨의 숙소로 뛰어갈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해원이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을 공격한 그놈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 느슨한 사이 그놈이 해원을 밀쳤고 해원이 부딪쳐 넘어졌다. 뛰어나가는 그놈을 잡아 수빈이 무언가로 쳤고 그놈이 넘어졌다. 해원이 일어나 무언가로 그놈 뒷머리를 쳤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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