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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금리인상 기조에 기업들의 자금조달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회사채 발행 규모는 1년 전보다 25% 넘게 줄었고 발행 금리는 최고 10%까지 치솟았다. 경기침체 우려 등 다양한 악재마저 겹치면서 회사채 금리와 국고채 금리 간 격차는 12년 만에 최대치를 찍었다. 특히 A등급 이하 비(非)우량채의 경우 고금리로 발행해도 매각되지 않는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기업들은 단기조달증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 규모는 1년 사이 빠르게 팽창했다. CP를 단기자금조달이 아닌 장기자금조달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우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장기 CP 발행이 신용등급 왜곡 등 금융시스템의 신용위험을 옮길 수 있는 것이 문제라며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비우량 회사채 중심으로 발행액 줄어
기업들의 대표적인 자금조달처인 회사채 시장은 최근 꽁꽁 얼어붙은 상황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8월2일까지 회사채 발행액은 56조494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75조7247억원) 대비 25.4%나 감소했다. 2018년(48조8976억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다. 발행액에서 상환액을 뺀 회사채 순발행액도 쪼그라들었다. 1년 전과 비교해 27조7826억원에서 7조1628억원으로 무려 74.2%나 줄어들었다. 6년 전인 2016년(1조8817억원) 다음으로 적은 금액이다.
회사채 발행이 침체에 빠진 것은 채권금리가 급등한 탓이 크다. 회사채(무보증3년)AA-등급 금리는 연초 연 2.460%였지만 2일 3.983%를 기록했다. 두 달째 3.9~4.4%대 사이를 오가고 있다. 같은 기간 회사채(무보증3년)BBB-등급 금리는 연 8.316%에서 9.831%로 치솟았다. 3월28일 9%에 진입한 후 4개월 넘게 9~10%대를 넘나드는 중이다.
국고채와의 격차도 더 벌어졌다. 크레딧 스프레드(회사채 3년물 AA-등급 금리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를 제외한 것)는 2일 기준 0.971%p로 집계됐다. 연초 0.605%p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 8개월 사이 0.366%p 증가했다. 인플레이션, 경기침체 우려 등 다양한 악재가 겹치면서 회사채보다 안전자산 격인 국고채를 선호하는 투자 심리가 강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모든 회사채가 부진한 것은 아니다. 등급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신용등급 AAA급 이상 회사채에는 자금이 쏠리고 있지만 A급 이하 회사채 발행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연 6% 이상 고금리로 발행해야 할 정도다. 실제로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AAA등급 무보증 일반회사채 발행액은 3조7400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14.4% 늘어난 반면 A등급(3조9980억원) 회사채와 BBB등급(1조4680억원) 회사채는 이 기간 40.8%, 9.8%씩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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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오동훈 기자] ⓒ스카이데일리 |
일례로 신용등급 A+인 특수목적회사(SPC) 통영에코파워는 지난달 28일 1·2회 공모 회사채(모집금액 1980억원) 청약에서 미매각이 발생했다. 1회차(1200억원)는 HDC가 지급보증에 나서 A급으로 부여받았고 2회차(780억원)는 한화에너지가 지급보증을 하면서 A+급으로 설정됐음에도 총 10억원(1곳)의 주문을 받는 데 그쳤다. 희망금리 범위도 BBB+3년물 금리 수준인 5.7~6.1%로 높게 제시했지만 기관투자가의 투심을 사로잡지 못했다.
모회사 GS글로벌의 지급보증으로 회사채 발행에 나선 GS엔텍(A급)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달 8일 800억원 규모 2년(연 4.986%)·3년(연 5.292%)물 공모 회사채 청약에서 총 200억원의 투자수요만을 확보했다. SK디앤디(BBB급)도 지난달 27일 2년물(연 6%) 공모채 청약에서 모집액 200억원 중 50억원만 기관투자자에 배정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회사채 발행이 증가하면서 나타났던 발행 부담은 크게 완화됐으나 여전히 회사채 수요 회복이 문제다”면서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으로 국고채 금리 변동성 확대가 유동성이 떨어지는 회사채 수요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이러한 수요 부진은 발행시장에서 낮은 수요예측 경쟁률과 발행 스프레드 확대로 인해 유통시장인 크레딧 스프레드 확대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CP 등 단기금융 비대… 장기물 위주로 발행 급증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은행 차입도 어려워지자 기업들은 단기금융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2일 기준 CP의 발행 잔액은 111조4880억원으로 집계됐다. 연초 82조8607억원에 비해 34.5%(28조6273억원) 급증했다. 작년 초 CP 잔액이 61조5272억원이던 점을 고려하면 1년 8개월 사이 약 2배 팽창한 수준이다.
CP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단기적인 자금 수요에 따라 발행하는 증권이다. 신용도 B등급만 넘으면 담보·보증을 제공할 필요없이 신속히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투자자의 경우 CP를 단기여유자금의 운용대상으로 활용한다. 신용위험도가 낮고 만기가 짧아 가격변동 위험이 적기 때문이다. 발행자와 투자자 간 수요가 맞아 떨어지면서 CP시장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만기 1년 이상에 해당하는 장기 CP 발행이 크게 늘어났다. 2일 장기 CP 발행 잔액(금융 및 보험업 기준)은 30조2700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초(18조6750억원)와 비교해 62.1% 늘어난 수준이다. 이 기간 전체 CP 발행 잔액에서 장기 CP가 차지하는 비중도 22.5%에서 27.2%로 5%p 정도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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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오동훈 기자] ⓒ스카이데일리 |
이는 채권시장의 수요 감소에 대응해 CP를 장기 조달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P 조달의 경우 만기 1년을 초과하면 투자위험 등을 담은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회사채처럼 수요예측 등과 같은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어 자금을 조달하는 데 편의성이 높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장기 CP 발행 확대는 최근 금리 상승에 따른 신용채권시장의 경색에 대응한 탄력적인 조달 전략”이라며 “CP의 경우 특정 금융기관과의 지속적인 거래관계를 기반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금리의 탄력성도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의 장기 자금조달 수단으로 장기 CP 발행을 확대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장기 CP 비중이 확대하는 것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신용등급의 왜곡, 거래가격의 정교성 저하, 금리 상승기 환매의 어려움에 따라 운용상품의 유동성 저하의 문제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유다.
김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유동화 CP의 부실화로 다양한 투자자가 손실을 입었고 CP가 신용위험을 이전시킨 주범으로 지목됐다”면서 “장기 CP의 경우 만기가 길고 유동성이 낮기 때문에 고객의 환매 요구에 적시적인 대응이 어렵고 가격의 정교성도 낮을 가능성이 있고 특히 금리가 크게 상승하거나 대규모 환매가 발생하는 경우 장기 CP로는 대처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어 “장기 CP의 과도한 확대는 신용채권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CP는 당사자 위주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고 회사채의 수요예측과 같은 주요한 발행절차를 도입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러한 편의성으로 인해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채권시장의 경색을 보이는 경우 장기 CP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해 신용채권시장은 더욱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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