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한글 컨텐츠 삼은 ‘세종학도’ 예술가 1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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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K컬처의 정점 세종대왕·세종학에 충실한 학도
세종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시도하는 예술가들
세종대왕 ‘문화엑스포’를 통해 조명·향유돼야

이재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19 09:50:39

이 땅의 삼척동자도 다 아는 세종대왕. 하지만 깊이 들어가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곤 위인전·드라마·영화에서 본 게 다가 아닐까. 우리가 대왕께 빚진 게 어디 한글만이겠는가.

한글 하나만으로도 위대한 대석학이자 동서고금의 어떤 제왕보다도 뛰어난 계몽 성군으로 추앙받아 마땅한 세종대왕. 문자 외에도 사회·학문·예술·국방·과학 등에 걸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우리 겨레의 위대한 스승(실제로 스승의날 5월15일은 대왕의 탄신일이다)에 대해 추앙하고 사랑은 하지만 그것이 좀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미국 브리검영대학 명예교수인 마크 피터슨은 ‘우물 밖 청개구리’라는 유튜브를 통해 한국인들이 얼마나 위대한 유산과 자질을 가진 국민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수도 없이 언급한 바 있다. 특히 한글의 문자적 우수성에 대해서 오히려 외국인들이 더 놀라워하고 있지만 우리는 마음속으로만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너무 겸손한 탓인지 아니면 확신이나 자신감이 없어서인지.

필자는 세종대왕에 대해 공부할수록 ‘계몽적 성군’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물론 어떤 학문적 검증을 거친 것은 아니다. 서구 계몽사상을 대입해 보려는 것이야말로 에드워 사이드가 지적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 동조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14세기, 서양이 중세 암흑기에서 막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대에 한반도 조선에서는 위대한 빛의 현자가 탄생했고 장성한 15세기에는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의 수많은 위업을 이룬 위대한 계몽군주이자 성군, 민족의 별이 되어 광명의 빛을 겨레에게 베풀었다. 백성들에게 지적인 깨달음을 베풀고자 했던 것이야말로 무지로부터의 해방이며, 암흑에서 만난 한 줄기 빛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한 깨달음에서 자주적인 공동체 구성원으로 참여토록 한 정책과 그 실현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삶이야말로 성자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종대왕을 계몽주의자로 보는 시각이 학계에서 일반화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잖은 예술가의 반응은 다르다. 서구적 프레임이기는 하지만 여러 정황이 계몽주의적 선각자로서 손색이 없는 것 같다는 심증에 근거한 판단과 확신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관력으로 공감하며 구체적인 창작으로 세종이야기를 펼치려는 움직임들을 구체화하고 있다. 물론 미술작가들이 세종대왕에 대한 주제를 소화하는 방식이 그리 쉽지는 않다. 역사에 대한 통찰력과 분석력, 해석력 등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런 역량에 기반하여 세종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시도 중인 10인의 예술가들이 있다. 필자는 이들을 세종학도(世宗學徒)라 부른다.

■ 금보성= 그는 오랫동안 한글 자모에서 영감을 받아 화면을 추상적으로 구성하면서 담담하게 회화의 묘미를 살려 내고 항상 한글의 무한한 조형적 가능성을 발굴해 내려고 애 쓰는 작가이다.

■ 김도영=한글 자모에 전통 한옥 지붕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의 이미지를 입히는 재치 있는 감각의 작업을 하고 있다. 시류에 맞는 카피를 문자로 구성할 때마다 가까이서 보면 한 폭의 한옥마을 풍경을 보는 것 같다.

■ 김영원=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하면서 세종에 대한 연구를 깊이 있게 한 바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대표적인 세종학도이다.

■ 김창겸=인터액티브 미디어 작가로서 관객의 행위에 반응하는 꽃의 정원을 연출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접시에 꽃잎이 떨어지는 장면의 서사에서 한글 단어들이 꽃으로 승화되고 있다.

■ 노주환=일찍부터 한글을 모티브로 하여 입체적 조각 작업을 해 온 작가는 교훈적인 글귀들을 조형적으로 구성하여 조각한다. 체험과 교육적 가치도 함께 구현하고 있다.

■ 유경자=도자 설치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도편으로 만든 무수한 양각의 자모들이 빛의 매개가 되며, 군집의 묘미와 함께 어떤 지혜의 공동체 세계를 암시하기도 한다.

■ 이돈아=미디어와 페인팅을 병행하면서 세종의 ‘우리의 하늘’을 표현하는 작업을 많이 해 왔다. 달항아리가 달로 변신하는 렌티큘러 자체가 정체성을 어필하는 가운데 모듈들이 모여 한글을 연출하는 것이 압권이다.

■ 이용재=동선으로 인물 표현의 모델링을 노련하게 수행하는 작가로서, 사람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소통의 매개가 바로 한글 초성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 임근우=한글 초성을 주로 큰 화면에 배치하여 초성만으로 표정까지 상상할 수 있는 한글의 놀라운 소통 기능을 그림에서 역설하고 있다.

■ 한호=미디어 회화 작가로서 화면에 구멍을 내 LED 조명을 결합시키는 방식의 작품을 주로 한다. 광활한 우주에서 빛을 발하는 항성(恒星)으로서의 한글을 암시한다.

이렇게 보면 이 작가들은 세종에 매료되고 세종에서 영감을 받고 있는 ‘세종학’의 충실한 학도들이다.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경험하는 ‘세종학’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무한한 영감의 보고임을 알 수 있다. 21세기가 디지털 패러다임의 세상이다 보니 우리 한글이 재평가되고 있다. 최적화된 디지털 속성의 문자이기에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과 위상이 가능한 것이다. 세계가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를 주목하기 시작한 이때, 우리가 세계인을 더욱 강력하게 사로잡을 무기는 바로 세종대왕과 한글이라는 컨텐츠가 아닐까.

현재 승승장구하는 K컬처가 얼마나 더 위력을 가질지는 알 수 없지만 세종대왕이라는 컨텐츠가 그 정점이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외국에서 ‘한국학’이 인기를 끈다고 한다. 거기에는 ‘세종학’이 그 정점에 있어야 한다. 이제 대왕의 위업은 작은 전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엑스포 수준의 한마당에서 대대적으로 조명되어야 할 시대적 컨텐츠이다. ‘세종문화엑스포’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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