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여자 <42회> 화영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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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신문에 기사 한 줄 뜨면 살아는 있구나, 생각해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25 09:01:27

“수빈아. 우리 누군지 알겠어? 들리면 고개라도 끄덕여 봐.”

몇 번이나 선우와 화영이 수빈의 침대를 들여다 보며 말을 걸었지만 수빈은 멀뚱히 그저 보기만 할 뿐이었다. 누군지 몰라보는 것뿐 아니라 말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뿐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밥도 스스로 드시고 씻거나 하는 것도 혼자 잘 하시구요. 저희랑 소통할 땐 듣는 건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왜 우리가 하는 말은 못 알아듣는 것처럼 보이지? 화영이 선우 옆구리를 쿡 쳤다.

“뇌의 특정 부분 기능에 장애가 생긴 정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러 검사를 해봤지만 심각한 건 아직 드러난 게 없어서 시간을 보내면서 좀 더 지켜볼 생각입니다. 저희는 점차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원은 아직 그대로지만 수빈이라도 조금 나아졌으니 병원을 나오는 걸음이 아주 무겁지는 않았다. 화영은 선우의 팔짱을 끼고는 자신을 따라오기만 하라는 듯 단골인 듯한 와인바로 끌고 갔다. 저녁 내가 살 게. 오늘은 와인 한 잔하는 거야! 병원 들어올 때 입구에서부터 화영이 못을 박았었다.

“형석 씨는 잘 있지?”

안부를 묻는 선우의 말에 화영은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별거한 지 5년, 이제는 누군가 화영에게 형석의 안부를 묻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글쎄. 내 이름 옆에 자기 이름 붙은 서류 말고는 더 이상 인연 없는 사람인 걸 뭐.”

“왜 그래…. 며칠 전에도 신문에 형석 씨랑 너, 무슨 행사에 나타났다고 기사 뜬 거 봤는데….”

풉 웃음이 나왔다.

“잠깐 만나 둘이 손잡고 사진만 찍는 거야. 그리곤 바로 바이바이.”

“미국 있을 때 한인 신문에 너네 부부 가끔 나왔었어. 함께 어디 참석했다. 누구랑 식사했다. 그런 사진이랑 기사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어.”

선우야 너도 많이 외로웠지? 알아 그 마음. 말 대신 화영은 선우 잔에 와인을 채워 주었다. 아마 그 시절 선우가 있었다면 화영은 세상의 손가락질을 무릅쓰고 밖으로 뛰쳐나왔을 것이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선우가 미국으로 떠나자 세상에 오로지 자신 혼자 내팽개쳐진 것 같았다.

“그땐 한 집에 같이 살 때지. 지옥이었어. 시댁에선 매일 불러 다 벌세우지. 네가 미국 가고 없으니 하소연할 데는 없고…. 요즘은 그래. 신문에 기사 한 줄 뜨면 살아는 있구나, 생각해.”

“어머니 걱정 많으시겠어. 아직 일본에 계시지?”

선우가 미국서 들어온 지 1년이 넘었지만 둘이 속내를 털어놓을 기회가 없었다. 선우 아버지가 돌아가신 데다 미술관 개관 준비로 바쁜 상황에 수다 떨 시간을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참, 내가 아직 말 안 했네. 엄마 죽었어.”

화영은 고개를 돌렸다. 놀란 선우의 눈을 볼 자신이 없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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