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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20구 강베타 역. 이 역 바로 옆에는 페르라셰즈 공동묘지가 있다. 여기에는 오스카 와일드·짐 모리슨·마리아 칼라스·에디뜨 피아프·이브 몽땅·시몬느 시뇨레·아폴리네르·발작·몰리에르·비제 등 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누워있다.
이들을 보기 위해서일까. 연간 350만명의 방문객이 페르라셰즈를 찾는다. 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프레데릭 쇼팽의 묘지다. 그곳에 가면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놓고 간 꽃다발과 촛불들이 쇼팽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 주고 있다.
폴란드인 쇼팽. 그는 왜 파리에 잠들어 있을까? 쇼팽은 바르샤바 공화국 마조비아의 젤라조바볼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니콜라 쇼팽은 프랑스 동부 로렌지방의 농가 출신이고, 어머니 테클라 쥐스티나는 폴란드의 귀족 집안 딸이었다. 니콜라는 어린 시절 폴란드 귀족의 지원으로 공부했고 그 귀족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함께 동행했다. 니콜라는 거기서 스카르백 가문의 가정교사를 하다 테클라를 만났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쇼팽. 통상은 프랑스인이어야겠지만 쇼팽은 그의 조국을 폴란드라고 말하곤 했다. 바르샤바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쇼팽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어머니였다. 테클라는 폴란드 춤곡을 치거나 오긴스키의 곡들을 자주 연주했다.
쇼팽은 이때 피아노를 익혔고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니콜라와 테클라는 쇼팽이 여섯 살이 되자 체코의 만능 음악가 보이치에흐 지브니 선생에게 레슨을 받게 했다. 그 후 쇼팽은 바르샤바의 음악학교에서 정통 교육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성년이 된 쇼팽은 바르샤바의 갑갑한 생활을 못 견뎌 했고 비엔나와 파리로 나가 큰 무대에 서고 싶어 했다.
우물 안 개구리 쇼팽, 프랑스에서 점프할 기회 만나
바야흐로 21살이 되던 해 쇼팽은 파리로 왔다. 그 당시 파리는 정치적 소요로 어수선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세계 제1의 도시였다. 쇼팽은 보헤미안과 아티스트들이 많이 사는 파리 2구 푸아소니에르 가(街) 27번지에 정착했다.
그리고 예술가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때 들라크루아·리스트·플레엘·발자크·베를리오즈·솔버그·칼크브레너·에라르·하인 그리고 여러 귀족을 만나 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과 우정을 쌓았다.
쇼팽은 이때 인생의 대전환점을 맞게 된다. 여섯 살 연상의 여인 조르주 상드를 만난 것이다. 상드는 남성이 지배하던 프랑스 문학계에서 자존심이 강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였다.
쇼팽은 파리 사교계에서 지적이고 당당한 상드를 만나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들은 곧 연인 사이로 발전했고 7년 간 함께 살면서 노앙에서 매년 여름을 보냈다.
프랑스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노앙. 이곳은 조르주 상드의 땅으로 불린다. 상드는 이곳의 고향집을 가장 유명한 예술인들, 철학자들, 사상가들에게 개방했고 예술의 요람으로 가꾸었다.
여기서 쇼팽은 상드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다. 들라크루아·발작·리스트는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이었다. 쇼팽은 그들과 담소를 나누며 빠르게 성장했다. 상드는 병마에 시달리는 쇼팽이 창작을 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그녀는 쇼팽의 음악에 직접적 영향을 준 건 아니다. 애인이 고요하고 평온하게, 심지어 때때로 고통의 한가운데 있어도 이를 벗어나 음악적 사고를 형식화하도록 돕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인간 쇼팽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의 음악에 전혀 그런 요소가 침투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노앙은 쇼팽 창작의 보고, 고향 마조비아를 닮은 곳
쇼팽의 걸작 대부분은 노앙에서 작곡된 것이다. 특히 ‘이별곡’으로 잘 알려진 에튀드 작품10 제3번·타란텔라·환상곡·자장가·뱃노래·수많은 야상곡·3개의 소나타·12개의 마주르카·2개의 발라드곡·2개의 스케르초·3개의 즉흥곡·3개의 왈츠·2개의 폴로네즈 등 소위 쇼팽의 팬들이 즐겨 찾는 곡들은 모두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쇼팽은 노앙에서 폴란드의 향기를 느꼈다. 조국을 떠나 유년의 노스탈지아로 가득 찬 쇼팽에게 이곳은 어린 시절을 보낸 마조비아 마을 사람들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산책을 할 때마다 고향의 풍경들을 발견했다. 마을 사람들이 벌이는 축제와 농부들의 공연에 참석해 백파이프와 교현금으로 연주되는 낯선 음악을 들으면 더욱 그러했다.
상드는 쇼팽에게 헌정한 소설 ‘악마의 늪’에서 노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누아르 계곡 한 가운데 있는 노앙은 경이롭게 광대하다. 흑갈색과 초록의 땅에 드리워진 고랑, 둥근 호두나무들, 그늘진 오솔길, 뒤죽박죽인 칡넝쿨, 잡초가 우거진 묘원, 로마식 주랑현관, 썩어 가는 느릅나무, 포도밭과 초록의 삼밭이 예쁘게 둘러싼 농부들의 작은집. 이 모두는 고요하고 소박하고 적막한 가운데 오랫동안 살아온 이의 시선을 부드럽게 하고 생각을 값지게 한다.”
이처럼 노앙은 쇼팽과 상드의 영혼의 땅이었다. 그들이 떠난 지 150년, 지금도 이곳은 여전히 옛 정취가 남아 있다. 수려한 자연과 문화유산·오솔길 등이 그것이다. 7ha가 넘게 펼쳐진 평원에 백년이 넘는 마로니에가 빼곡히 차 있고 그 주위를 보브로 강이 휘돌고 있다.
이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들으며 밤 별을 바라본다면 어떠할까. 모든 시름이 사라지고 꿈처럼 달콤하지 않을까. 매년 여름 두 달 동안 열리는 ‘노앙 쇼팽 페스티벌’, 여기에 참가한다면 여러분도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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