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추억을 만들어 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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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안토니 디쉴드의 한국영국 두 나라 이야기

한국 어린이와 추억을 공유하려던 안토니의 실패담

이진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25 09:04:36

여름방학과 여름 휴가철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영국 학생들의 여름방학 기간은 한국과 비슷하다. 7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6주간 이어지는데 이 기간 동안 공항과 도로는 휴가 인파와 차량으로 북적인다.

자동차와 비행기, 컴퓨터와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편화되기 이전 영국에서는 학교 방학이 시작되면 한국에서 추석이나 설에 민족대이동을 하듯 사람들이 일제히 휴가를 떠났다. 오늘은 안토니가 어린 시절 추억 중 하나를 한국의 어린이들과 공유하려 했으나 무산된 경험 두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영국의 휴양지에는 으레 갖가지 탈것과 놀이기구를 초대형 운반 차량에 싣고 여기저기서 모여드는 ‘펀페어’(Travelling Fun Fair·이동유원지)가 설치된다. 영국인에게는 어린 시절 이곳에서 부모와 함께 오락 게임을 탈것을 타며 즐기던 추억이 있다. 그리고 부모가 되면 자기 부모가 해 줬듯이 자녀와 함께 펀페어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녀에게 추억을 심어준다.

안토니가 영국 노팅엄에서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한국의 어린 학생과 가족이 영국에 왔다. 마침 이때가 10월이라 노팅엄에서는 펀페어로는 규모가 유럽에서 제일 크다는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구스 페어(Goose Fair)’가 열리고 있었다.

영국을 경험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겠다고 생각한 안토니는 한국 학생과 부모를 그곳에 데리고 갔다.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둘러본 한국 가족은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스카이 트위스터(Sky Twister)’를 타기로 했다.

놀이기구가 멈추고 그들이 출구를 나오자 안토니는 다음번 놀이기구에 낼 파운드 동전을 쩔렁거리며 신나는 얼굴로 무엇을 탈 것인지 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의 반응이 시큰둥한 데다 부모의 대답은 확실한 거절이었다. 아이과 함께 번지점프를 한 번 더 타보고 안토니는 노팅엄 구스 페어를 나와야 했다.

▲ 스코틀랜드 컬른베이에서는 매년 7월이면 ‘모리슨 펀 페어’가 2주 동안 열린다. [사진=필자제공]

안토니에게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하는 휴양지에서의 추억이 또 하나 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색색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양동이와 삽(Bucket and Spade)으로 모래성을 짓고 탑들을 쌓아 그 위에 만국기를 꽂아 놓는 것이다. 영국의 어린이들은 모래성을 완성하는 뿌듯함과 아울러 이것이 밀물에 씻겨 내려가는 허탈감을 경험한다.

안토니가 한국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하루는 이곳에서 알게 된 한국 어린이의 가족과 함께 바닷가에 갔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 어린이가 많이 있는데 햇빛에 반짝이는 모래사장에는 단 하나의 모래성도 지어져 있지 않았다. 안토니는 팔을 걷어붙이고 버려져 있던 빈 컵라면 컵을 이용해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 성채를 완성한 후 외벽을 쌓고 성 둘레에 적의 침입에 대비할 방어도랑을 팠다. 말하자면 해자다. 바닷물이 도랑에 밀려 들어와 제법 해자의 면모를 갖췄다.

그러자 여태껏 보고만 있던 어린 아이가 안토니가 파놓은 도랑을 메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후 5분 동안 모래성 쌓기를 가르쳐 주려는 안토니의 노력과 바닷물이 성곽 주변을 둘러싸는 걸 막으려는 어린이의 시도가 계속됐다. 한국말을 못 하는 안토니와 영어를 모르는 어린이의 말없는 전투가 이어진 것이 당연했다.

“Let's go down to the beach to let off steam(바닷가에 가서 머리 좀 식힙시다).”

‘let off steam’이란 표현은 쌓여 있던 감정을 터뜨려 머리를 식히는 것을 뜻한다. 만화에서 어떤 사람의 양쪽 귀로 감정이 ‘푸우!’하고 폭발하는 장면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예를 들어, 밤낮으로 중간고사 준비를 하고 시험을 치르고 난 자녀가 묻는다.

“Mom! I need to let off steam. Can I go out with my friends today?”

(엄마 머리 좀 식혀야겠어요. 오늘 친구들이랑 나가서 바람 쐬고 와도 돼요?)

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도 한마디 한다.

“Our team at work completed a project just before deadline. We are going on a day trip today to let off steam.”

(우리 직장 팀이 마감에 겨우 맞춰 프로젝트를 끝냈거든. 우리 머리 식히러 오늘 당일치기 여행 갈 거야.)

이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도 발을 동동 구르며 외친다.

“How about us! We need to let off steam as well!”

(우리는요! 우리도 머리 좀 식혀야 한다구요!)

엄마가 대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