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여자 <46회> 원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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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 <46회> 원점으로

일단 시골 요양원으로 옮겨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31 08:30:22

“고무풍선에서 바람을 빼는 건 커다란 망치가 아니요. 아주 작은 바늘이요.”

우룡이 했던 말이 계속 상훈의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명문 집안 자제인 건 세상 다 아는 사실이고 미국 생활 오래 하신 분이라 걱정 안 합니다. 그래서 털어도 먼지가 안 나와야 합니다. 이 변호사처럼 깨끗한 분일수록 기대치가 커서 사소한 잡음에 흠집이 더 잘나는 법이지요.”

언론이 무얼 문제 삼는다는 말인지를 묻는 상훈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시장 후보 이상훈이라는 이름이 언론에 건너가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어요. 그동안 점검 차원에서 사소한 것까지 한 번 돌아보고 챙기면 좋겠소.”

우룡은 마치 수빈의 일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상훈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이 상훈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한참 바라보았다. 상훈의 마음을 가장 찜찜하게 만드는 게 바로 그 부분이었다.

또한 비서실장 한동원이라는 작자와의 인사도 개운치 않았다. 보통은 처음 보는 사람과 악수를 할 때 손을 잡고 가볍게 쥐었다 놓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는 상훈에게 손을 다 내주지 않았다. 손끝만 살짝 내밀더니 바로 손을 거두었다. 따지고 든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결례가 되는 일이었다.

결국 한동원은 상훈이 마뜩잖다는 걸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대표님?”

커다란 창을 향해 한참 생각에 빠져 있는 상훈을 장 변호사가 돌려세웠다.

“탭에 담아왔습니다. 대일병원 입원하고 있는 이수빈 씨 하고.”

안해원 씨 사진입니다, 장 변호사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이미 상훈은 탭을 빼앗아 수빈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몇 장을 더 넘겨보았지만 그 이수빈이었다. 세월만 흘렀을 뿐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그때의 그 이수빈이 맞았다.

선우와 친구라는 걸 상훈이 몰랐던 것처럼 수빈도 선우와 상훈의 관계를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수빈이 안다 해도 상훈과의 일을 함부로 선우에게 털어놓는 건 쉽지 않을 것이었다.

“장변. 나 곧 공천 받는다. 서울시 들어갈 때 같이 가자.”

장 변호사는 상훈의 사무실을 나와 바로 수빈이 있는 병원을 향해 엑셀을 밟았다.

“일단 시골 요양원으로 옮겨. 간병인 하나 붙여놓고. 혹시 제정신이 돌아오거나 하면 바로 연락하라고 해.”

수빈은 주차장 옆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장 변호사는 못 본 척 지나쳤다. 마음이 급했다. 데리고 나가려면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말도 못하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다면서, 담배는 피우는구나. 생각을 하면서 빠르게 원무과로 걸음을 옮겼다.

우선 밀린 병원비를 해결했다. 그리고 환자를 데리고 가족과 함께 집을 다녀오겠다며 간호사의 양해를 구했다. 외출증을 끊고 하는 과정이 좀 길어지긴 했지만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준비를 마치고 담당 간호사와 병실에 들어갔을 때, 이미 수빈의 침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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