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민주당’은 다시 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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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당헌 논란에서도 드러난 민심과 당론의 괴리
팬덤 정치에 휘둘려 ‘안 되는 길’로만 치달아
국민의 ‘집단 지성’ 읽어야 반전 이룰 수 있다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31 08:44:47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이재명 의원을 당 대표로 선출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번 전당대회를 전후해 정작 관심이 쏠리는 건 ‘이재명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앞날이다. 민주당은 이번에 ‘다시 뛰는 민주당’을 구호로 내걸었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과연 대선과 지방선거의 연속 패배를 딛고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까.

현재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점을 꼽자면 당 내부의 판단이나 결정이 일반 상식과 현격한 괴리를 보이고 있는 점이다. 중요 고비마다 당이 선택한 길이 악수(惡手)가 되어 스스로 발목을 잡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 동안 논란이 됐던 당헌 변경 문제만 해도 그렇다. ‘권리당원 전원 투표가 전당대회 의결에 우선한다’는 당헌 신설이나, ‘당직자가 기소될 경우 직무를 정지한다’는 당헌 개정 문제를 놓고 당 내부가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당헌을 바꾸는 쪽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권리당원 우선 원칙’의 경우 월 1000원 이상, 6개월만 당비를 납부하면 누구나 권리당원이 될 수 있는데 이들 집단의 결정이 잘못됐을 때는 어떻게 되는 건지, 민주당의 오랜 정체성은 무시돼도 상관없는 건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당직자가 기소되어도 계속 당무를 맡길 수 있다’는 새로운 당헌 역시 ‘이재명 방탄’을 위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칫하면 ‘팬덤 정치’에 휩쓸려 당이라는 배가 산으로 가 버릴 수도 있고, 당 대표와 함께 당도 ‘동반 침몰’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당헌 변경에 대한 일반 유권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고 비판 여론이 거세다. 그럼에도 당 내부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떠밀려 가고 있다.

민주당이 어떻게 되든 그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국의 정치 체제는 이제 양당제로 굳어졌다. 제3세력인 정의당과 국민의당은 급속히 위축되거나 다른 당에 흡수된 상태다. 양당제 시스템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국민의힘 아니면 민주당으로 제한된다. 정권도 이 둘 가운데 하나가 잡을 수밖에 없다. 그 한 축이 흔들리면 새로운 정치판이 짜이기 전까지는 정당 정치가 크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 국민에게 어떤 피해가 돌아갈지 모른다.

민주당의 궤도 이탈은 디지털기술의 발달로 인해 정당 시스템이 크게 달라진 것도 한 가지 배경이다. 3월 대선을 기준으로 민주당의 전통 당원은 16만명인데 비해 ‘온라인 당원’은 25만명으로 추산됐다. 지금은 민주당 당원 숫자가 120만명이라고 하는데 온라인 당원은 그동안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당원 신분증은 어느 학자의 말대로 온라인으로 언제든지 구매 가능한 ‘상품’이 됐다.

당원의 구조와 경계가 급변하면서 어느새 온라인 당원이 당의 주류로 떠올랐다. 또한 당과 매우 근접한 거리에 특정 인사를 지지하는 팬덤 그룹이 우뚝 버티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정치적 참여의 강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대깨문’이나 ‘개딸’을 연상하면 된다.

이렇게 판이 확 바뀌면 전통적인 당원들은 무력감과 냉소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어떤 조직에서 토론이 벌어졌을 때 일부가 목청 높여 분위기를 장악해 버리면 나머지는 침묵하거나 등을 돌리는 것과 같다. 민주당의 텃밭인 호남 지역에서 이번 전당대회의 투표율이 35%로 유달리 낮게 나온 것이 그 생생한 방증이다. 78%라는 이재명 대표의 압도적인 득표율도 자세히 보면 ‘그들만의 결집’으로 비쳐진다.

문제는 이런 구조에서는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정당 운영의 방향이 극단으로 가버리는 점이다. 합리적 중도의 의견은 배제된다. 당 지도부도 각종 경선과 전당대회 등에서 그들의 선택을 받으려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지난해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불출마 원칙을 깨고 후보를 낸 것도, ‘검수완박’ 강행도, 지난 지방선거 때 이재명·송영길을 공천한 것도 모두 ‘당원들 의사’에 따른 것이었다. 이들 말을 들어서 일이 잘 풀린 적이 없다. 아니 ‘안 되는 길’로만 골라서 갔다.

정당은 ‘공직에 선출되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이다. 겉으로 아무리 국민·민생 등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본질은 그렇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면 공직에 선출될 수 없고 정당으로서의 존속이 불가능하다. 특히 양당제 시스템에서 선거는 결국 중도층 잡기 싸움이다. 민주당이 무책임한 세력에 휘둘릴수록 그만큼 현실 정치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개딸’만 탓할 일도 아니다. 예컨대 민주당의 DNA에 박혀 있는 듯한 친중·반미 노선만 해도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길 아닌가. 국민 80%가 한미동맹을 지지하고 혐중 정서가 뚜렷한 민심 지형에서 이들의 엉뚱한 고집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재명 새 대표는 “당원들의 집단 지성을 의사 결정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당원이 아니라 국민의 집단 지성을 바르게 읽어 내는 일이다. 이 대표의 불확실한 미래도 여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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