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땅] 동그라미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스카이&땅

[스카이&땅] 동그라미

조정진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9-06 10:07:45

▲ 동그라미 캐릭터를 이용해 만든 스티커. [에폭시스티커 홈페이지 캡쳐]

“너랑 있으면 내가 안전 해!” 지난달 막을 내린 ENA 채널의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한 대사다. 천재적인 두뇌와 자폐스펙트럼을 동시에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친구 ‘동그라미’(주현영 분)에게 한 말이다. 이름처럼 얼굴이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도 있지만 마음까지 둥글둥글해 영우에겐 가장 편하고 안전한 친구다.

심리학자에 의하면 자폐아는 어린 시절 유난히 동그라미에 집착한다고 한다. 냄비 뚜껑이나 자전거 바퀴는 물론 축구공·배구공 등 뭐든 둥근 것이라면 관심을 많이 보인다고. 동그라미는 각이 없고 둥글기 때문에 모서리가 있는 예리한 물건처럼 다칠 염려가 없어 보호자가 장난감으로 권하기도 한다. 딸랑이 등 갓난아기의 장난감이 둥근 것도 다 그런 이유일 게다.

1975년 태어난 윤연선의 노래 ‘얼굴’도 동그라미를 노래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가사다. 1980년대 서울 홍익대 정문 옆에 둥지를 쳤던 ‘동그라미가 되고픈 세모의 욕망’이라는 카페 이름도 정겹다. 탁자가 네 개뿐이던 작은 카페 주인은 “직장 생활이 무료해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어 가게를 차렸다”고 했었다. 원하던 동그라미를 찾았는지 궁금하다.

칼데콧 상 수상 작가 존 클라센과 맥 바넷은 동그라미와 동그라미의 친구인 세모와 네모가 나오는 ‘동그라미’ 책을 창작해 냈다. 동그라미의 말을 듣지 않고 폭포로 들어간 세모를 찾으러 갔다가 벌어진 동그라미스러운 이야기다. 2000년 발표된 가수 최유리의 노래 ‘동그라미’와 지난해 히트 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도 동그라미가 등장하지만 결이 다르다.

수학에서는 동그라미를 ‘기하학에 등장하는 도형으로 유클리드 평면 위에서 한 점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점의 집합’으로 정의한다. 재미없고 밋밋하다. 그냥 엄마의 얼굴, 엄마 얼굴 속 두 눈의 모양에서 발견한 동그라미가 더 현실적이다. 동그란 접시와 그 위에 살포시 얹힌 달걀 프라이도 동그라미다. 그러고 보니 책상 위의 종이컵도, 출출할 때 찾게 되는 김밥도,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 요긴한 우산의 손잡이도 둥근 모양이다. 동그라미야 고맙다. 조정진 주필

조정진 기자 jjj@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