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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집권 여왕의 퇴장과 英 왕실의 미래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9-14 00:02:40
 
▲ 박선옥 국제문화부장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왕국 14개 국가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8일(현지시간) 9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우리나라 시각으로는 9일 새벽 2시반경이다. 영국 본국 외에 캐나다·오스트리아·뉴질랜드 등에서는 영국의 왕이 국가 원수가 되므로 이들 국가에서는 국가 원수의 서거가 된다.
 
영국 왕을 국가 원수로 두는 영연방 왕국은 14개국이지만 이 조항을 빼고 영연방의 테두리 안에 속하는 국가는 모두 54개국이다. 이 인구를 합치면 약 23억명이니 전 세계 인구 77억의 약 3분의 1이다. 세계 인구 1·2위를 다투는 중국이나 인도 인구가 각각 14억이므로 이 두 나라 인구를 합친 것에 조금 못 미치는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존재감이 전 세계적이라는 뜻이다.
 
영연방국가뿐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952년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여왕으로 즉위했다. 그 후 70년간 재위하면서 영국 역사에서 최장 기간 왕위에 머물렀다. 세계 역사로 보면 프랑스의 루이 14세(73년)에 이어 두 번째로 긴 재위 기간을 가진 군주였다.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왕족’이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영국 외에도 군주제를 택하는 나라가 몇 있지만 유독 영국 왕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전 세계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다이애나 황태자비 사건도 그렇고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 부부의 이야기도 시시콜콜 전달된다. 엊그제는 찰스 국왕이 즉위식에서 선언문에 서명하기 위해 책상에 앉으려다 책상 위의 잉크병을 치우라고 손짓하며 얼굴을 찌푸린 일까지 동영상으로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국민과 세계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찰스 3세가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더 커지게 됐다. 3세라는 어린 나이 때부터 70년간을 왕위계승자로 있다가 73세에 비로소 국왕이 됐으나 어머니인 여왕의 후광이 너무나 밝은 상황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0세에 왕위 승계서열 1위에 올랐다. 그후 19세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여군에 입대해 트럭 정비와 운전 교육을 받는 등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왕의 아들과 손자들도 군복무를 통해 왕실 일원으로서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과 헌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왕이 재위 기간 가장 국민의 마음을 울렸던 일 중 하나는 1966년 10월 웨일스의 애버밴 마을을 방문했을 때라고 한다. 광산이 무너져 팬트글라스 초등학교를 덮치면서 어린이 116명 등 144명이 숨진 비극적 사건이 발생했는데, 현장을 방문한 여왕의 얼굴에 묻어난 깊은 슬픔이 국민에게 전달됐던 것이다.
 
영국 여왕의 서거로 전 세계가 애도하는 분위기였으나 그런 중에 부정적인 발언으로 애도에 찬물을 끼얹는 축도 있었다. 수백 년 영국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에서는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경기 도중 여왕 서거 소식에 환호성과 함께 “여왕이 죽었다”라는 가사를 넣어 노래를 불렀다. 여왕 재임 시기였던 1982년 영국과 포클랜드 전쟁을 벌였던 아르헨티나에서는 한 TV 진행자가 생방송 도중 샴페인을 터뜨리기도 했다.
 
영국 왕실의 존재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영국 공화주의자들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를 계기로 군주제 폐지를 주장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9일 군주제 폐지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 ‘리퍼블릭’은 “여왕 사후 군주제의 미래는 심각한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영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왕실 존속을 지지한다. 올해 6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국민 중 ‘군주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59%였다. 이는 10년 전에 비해 16% 감소한 수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왕실을 없애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왕실을 유지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왕가 소유의 재산도 막대하다. 그럼에도 영국인들이 왕실을 없애려 하지 않는 것은 전통과 옛것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견해가 짙다. 옛것에 대한 이들의 사랑은 관성적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조금 불편해도 옛것이기에 지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국 격언 중에 새로운 현명한 일보다 옛날부터 해 오던 바보짓이 낫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영국인들의 왕실 사랑의 또 다른 이유로 왕실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 드라마와 같은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 언급되기도 한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에서 현실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안에 살고 있는 한 남자의 일상이 TV 리얼리티 쇼로 방영돼 전 세계 애청자들의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영국이 자랑하는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세계는 하나의 무대이고 인간은 모두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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