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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삼중고로 우리 경제의 주름살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연일 치솟으면서 국내 각종 금리와 수입물가를 밀어 올리는 바람에 수많은 가정과 기업 가릴것 없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고환율(원화 가치 하락)이 수출 가격 경쟁력을 높인다는 통념과 달리, 원자재 수입비용 상승과 전 세계 교역 감소 등으로 수출에도 별 도움을 못 주는 형국이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원화 가치
15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14일)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1390.9원을 기록했다. 이날 원화 가치 하락폭은 다른 신흥국 통화보다 컸다. 이날 종가 기준 원화 가치는 하루 동안 1.24% 하락했는데, 대만 달러화(-0.59%)와 인도 루피화(-0.55%) 하락폭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원화 가치 하락세가 다른 통화보다 가파른 이유는 내년 우리나라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수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우리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가량으로 높은데 내년 반도체 수요 둔화로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보여 경제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4일 발표한 ‘물가 정점 통과와 다가오는 경기 침체’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내수와 수출이 모두 침체하는 ‘복합 불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7%로 전달(6.3%)보다 하락했다는 점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에 정점을 통과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하지만 3분기 들어 가계소비 심리가 악화되고, 설비투자가 침체하는 등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며 향후 세계경제가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지속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침체 국면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세계 경제성장률이 올해 3.2%, 내년 2.9%로, 국제 교역 증가율은 올해 4.1%, 내년 3.2%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물가 상승 압력을 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눈길을 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28일 발표한 ‘우리나라 인플레이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수입물가 상승률이 6월 기준 33%를 넘고, 수입물가의 생산자물가 상승률에 대한 기여율이 73∼82%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은 이번 인플레이션을 비용인상형(cost push inflation)으로 진단했다. 수입물가 상승이 이번 인플레이션을 촉발했고, 현재까지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영향으로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나빠져 소비 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점도 우리 경제의 과제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올 1월 105.33p에서 8월 110.35p로 상승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줬다. 생활물가지수란 일상생활에서 소비자들이 자주 많이 구매하는 쌀‧라면 등 생활필수품을 대상으로 작성된 소비자물가지수의 보조지표다. 소비자물가지수 내 상품 및 서비스 458개 품목 중 구매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144개 품목으로 구성됐다. 수치가 높을수록 체감물가 상승 폭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4일 ‘물가 정점 통과와 다가오는 경기 침체’ 보고서를 통해 “세계 경제와 국제 교역이 침체 국면에 빠지게 되면, 한국의 수출 경기 하강은 불가피하다”며 “아직은 수출이 증가세를 유지하며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수출단가 요인이 약화하는 하반기 이후에는 내수와 수출이 모두 침체하는 ‘복합 불황’이 우려된다”고 발표했다.
‘고환율=수출 호재’ 공식 무너져
더욱이 최근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을 포함해 국내기업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환율이 오르고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늘어나면서 해외 매출이 늘어도 실제적으로 이익을 보기 어려운 상황이며 항공사들도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을 달러로 지급해야 하기에 고환율의 ‘직격탄’에 허덕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원·달러 환율과 원자재가격이 각각 10% 상승하면 수입은 3.6%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0.03% 늘어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가파른 환율 상승이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제와 가계 살림살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고환율 상황이 원자재값 급등으로 우리 경제 무역수지를 악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무역적자가 누적되면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져 경제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10일까지 무역수지는 24억43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4월부터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한 무역수지는 이달에도 적자행진 중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명목 소비는 증가하는데, 실질 소비는 감소하는 ‘스티커 쇼크(sticker shock)’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고금리·고물가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소비 부진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스티커 쇼크는 예상 밖의 가격 상승에 따라 소비자가 받는 충격을 의미한다. 매장 내 제품 가격을 표시하는 스티커에서 유래된 표현이다.
주 실장은 또 “정부의 경제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물가 안정’에서 ‘경기침체 방어’로 점차 이동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경기 하강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고 있기에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할 때 ‘물가 안정’과 ‘경기 경착륙 방어’를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주실장은 특히 복합적인 대외 충격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가 경제 내 취약부문의 현황을 파악하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 역시 삼중고가 닥친 현 경제 상황을 ‘복합 위기’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상황에 맞춰 면밀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5일 정부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주요 경제 당국 수장이 참여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추 부총리는 당분간 경상수지의 변동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면서 해외 금융외환시장 및 실물경제 상황을 실시간 점검하고 신속히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추 부총리는 “변화된 글로벌 금융시장 여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방안 등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겠다”며 “무역구조 전반에 걸친 개선방안도 강구하겠다”고 언급했다.
추 부총리는 대내외 상황을 종합해볼 때 복합위기 상황의 장기화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진단한 뒤 “관계기관 합동으로 시나리오별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재점검해 금융·외환·실물경제 분야의 취약부문 실태점검 및 대응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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