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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에 걸쳐 스토킹 하던 상대 여성을 법원 판결을 하루 앞두고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살해한 ‘신당역 살인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스토커에 의한 살인 사건은 2016년에도 강남역 사건이 있었는데 그 후로 계속 발생했고 지난해 11월에도 35세 남성이 헤어진 여자 친구를 스토킹 하다 오피스텔에서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대체 스토킹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검색해 보았는데 어느 연구('친밀한 파트너 살인의 특성에 관한 연구 : 헤어진 파트너 대상 스토킹을 중심으로' 김성희 경찰대 교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2017~2019년 유죄 선고된 살인(살인미수, 예비 포함) 사건 336건 중 스토킹이 수반된 사건이 무려 37.5%이고 이 중에는 계획범죄 비중이 60%가 넘는다고 한다.
매우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인데 그래서 경범죄처벌법으로 밖에 포섭할 수 없었던 스토킹을 별도 범죄로 규정해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보호 제도 등을 신설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작년 10월부터 시행 중에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스토킹범죄는 ‘스토킹행위’를 지속적ㆍ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말하고 스토킹행위는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를 비롯해서 우편, 문자메세지 등 보내기, 주거 등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기, 주거 등에 물건을 보내거나 두기, 주거등에 있는 물건 훼손하기 등의 방법으로 불안감 또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말한다. 전통적인 폭행ㆍ협박 개념에 포섭하기 어려운 괴롭히는 행위들이 망라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피해자가 스토킹을 신고하면 경찰은 현장에서 즉시 스토킹행위 제지, 행위자와 피해자 분리 등의 응급조치를 취할 수 있고, 그래도 스토킹행위가 지속적·반복적으로 행해질 우려가 있고 긴급을 요하면 스토킹행위자에게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 등의 긴급응급조치도 취할 수 있다. 그 후에도 스토킹범죄 재발 우려가 있으면 잠정조치라는 명목으로 보호조치를 계속할 수도 있다. 각급 지방검찰청과 경찰서에는 스토킹범죄 전문 검사ㆍ사법경찰관도 두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외형상으로는 보호조치가 잘 설계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법의 허점도 보이는데, 긴급응급조치는 1개월을 넘지 못하고 잠정조치도 수사기관이 하면 2개월, 법원이 해도 최장 6개월을 넘을 수가 없는 점이다. 이 기간이 다 지나고 나면 보호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된다. 신당역 사건도 보호조치가 과감하게 취해지지도 못했지만 설령 취해졌더라도 3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쳤기 때문에 더 이상 써먹을 보호조치도 없어진 실정이었다.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스토킹범죄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설계했다는 점이다. 형법상 폭행죄가 대표적인 반의사불벌죄인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법원에 내주면 가해자가 처벌을 면할 수 있다. 그래서 피해자가 탄원서를 무기로 가해자로부터 합의금을 받아 낼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 그러나 만약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해서 합의를 안 해주면 오히려 가해자로부터 더 센 복수를 불러오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는데 이번 신당역 사건이 바로 그 예이다. 검사가 징역 9년의 중형을 구형했는데 피해자가 합의를 안 해준 것이 살인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폭행·협박에 포섭되지 않지만 ‘지속적·반복적’으로 행해져서 ‘불안감 또는 공포감’을 유발하고 상해, 살인 등 중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이 아주 커서 스토킹범죄를 처벌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애초부터 반의사불벌죄로 설계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든다.
이런 비극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반의사불벌 규정부터 당장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도 가해자는 합의 시도를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굳이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해 스토킹 가해자에게 마치 탄원서 수취가 당연한 권리인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소지만 있다고 보인다.
보호조치 기간도 위험성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연장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가해자의 자유가 너무 제한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대방을 스토킹할 자유 따위는 절대로 보호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형량도 대폭 높여야 할 것이다. 현재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인데 징역형만 놓고 보면 2년 이하 징역인 폭행죄보다는 다소 높지만 7년 이하 징역인 상해죄보다 훨씬 낮고 3년 이하 징역인 협박죄와 비슷한 수준이다. 지속적·반복적 괴롭힘이라서 죄질이 아주 안 좋은 점을 고려하면 형량이 의외로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해죄처럼 최소 7년 이하 징역은 되어야 균형에 맞다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형사소송법상에 규정된 구속 사유가 과연 범죄 대응에 효과적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구속사유는 범죄 혐의의 상당성과 함께 주거부정, 증거인멸, 도주 우려 등이다.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인정되어야 구속이 가능하다. 그런데 신당역 사건 가해자는 범죄혐의는 이미 입증되었고 직장인으로 주거가 일정하고 도주 우려도 없다고 해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재범의 위험성이 분명히 있었다. 재판 진행 중에도 또 스토킹을 해서 재차 고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상 ‘재범의 위험성’은 독자적인 구속사유가 못 되고 다만 고려 사항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런 고려 사항에 ‘범죄의 중대성’과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도 있는데 신당역 사건은 이 세가지 고려 사항이 모두 현실화된 사례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고려 사항으로 두지 말고 독자적인 구속 사유로 승격시키는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동안 형사소송법은 법원·검찰·경찰의 신체 구속에 대한 권한을 엄격히 제한하는 흐름이었는데 이제는 충분히 제어되고 있다. 반면에 새롭고 다양해진 범죄에 대한 대응에는 무력해진 실정이 되었다. CCTV같은 위치추적이나 과학수사 기법이 발달한 현실에서는 주거부정, 도주우려, 증거인멸 같은 전통적인 구속 사유들은 실효성을 상실했다고 본다. 재범 위험성과 피해자에 대한 보복 우려 같은 것들을 독자적인 구속 사유로 만들어 선제적이고 과감한 구속이 가능하게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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