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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그렇다고 이 그림을 훔쳐 나갈 줄은 정말 몰랐어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28 08:47:38

“네가 소선이 딸이구나!”

마루에 서 있던 정숙은 선우가 마당을 들어서자 맨발로 뛰어 내려와 선우 손을 덥석 잡았다.

“길 가다 봐도 한눈에 알아보겠어. 똑같아. 소선이랑 똑같이 생겼어. 하얀 피부랑 크고 깊은 눈매랑 긴 속눈썹에 야리야리한 몸매까지. 닮았네. 우아하고 기품 있는 엄마를 그대로 빼닮았네. 누가 나소선이 딸 아니랄까 봐. 닮았네, 똑같아.”

정숙은 선우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혼자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안녕하세요?”

선우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내가 너 만날 생각에 어젯밤을 꼬박 샜어. 잠이 안 오는 거야. 죽은 소선이 살아 돌아오는 기분이라 잘 수가 있어야지.”

정숙은 마루로 선우 손을 끌어 깊게 달인 칡차를 내주었다. 소선이 살아 있을 때 집을 오면 즐겨 마시던 차라고 했다.

“내가 엄마한테 신세를 많이 졌거든. 네 엄마 때문에 아직 살아 있어. 소선이 아니면 내가 살 수도 없었고 살아 있을 이유도 없었지.”

정숙은 선우와 진욱을 지하실로 안내했다. 전시실처럼 꾸며진 지하실은 우아한 조명 아래 소선의 그림 수십 점이 잘 보관되고 있었다.

“이 그림이 여기 있었네요. 이 그림두요. 아…, 저 그림은 대학 시절 유명 화랑에서 초청 전시를 했던 작품인데 이게 여기 있었네요.”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선우가 본 것이었다. 소선과 명환이 정리해 둔 작품 사진첩이나 신문 스크랩에서 본 그림들이었다. 소선이 그림 일부를 정숙의 집으로 옮겨둔 걸 모른 명환은 소선이 죽고 난 후 그림이 없어진 줄로만 알고 아쉬워했었다.

소선은 정숙의 집에 그림을 옮긴 후 내려올 때마다 그림 위에 보관액을 바르고 환풍기를 설치하고 지하실이 훤하도록 조명을 다 설치해 두었다.

“네 엄마가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었나 봐. 그때 그렇게 안 했으면 이 그림 내가 어떻게 보관했겠어?”

정숙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전구를 바꾸고 환풍기를 갈고 창문 새시를 새로 하는 일만 몇 번 반복했다고 했다. 자주자주 지하실 문과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습기가 생기지 않게 환풍기를 틀거나 건조하다 싶을 땐 가습기를 틀기도 했다. 모두 소선이 하던 걸 보고 했던 일이었다.

“그러다 아들 아이가 그림을 보게 된 거야. 그렇다고 이 그림을 훔쳐 나갈 줄은 정말 몰랐어.”

정숙은 환석의 일을 미안해했다.

“엄마 돌아가시고 시간이 얼만데 어떻게 그렇게 하셨어요?”

“나는 집사잖아. 이 그림이랑 집 지키면서 공짜로 평생을 살았으니까. 감사할 사람은 나지.”

정숙은 자기 죽기 전에 소선의 그림을 돌려줄 수 있어서 너무도 다행이라고 했다.

“소선이 죽었지만 언젠가는 정숙아, 나 그림 가지러 왔어. 할 것만 같았거든.”

정숙은 이제 집도 돌려주고 싶다며 그동안 편하게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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