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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각하! 졸지에 이 무슨 변이십니까. 이처럼 영전에 엎드려 삼가 영결의 말씀을 드리게 될 줄이야 어느 누가 상상조차 하였겠습니까. 아흐레 전 천지가 진동하여 산천초목이 빛을 잃었고, 경악과 비탄으로 온 국민 가슴이 메었습니다.”
1979년 11월3일 고 박정희 대통령 국장(國葬)장의위원회 위원장인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읽어나간 추도사 앞부분이다. 당시 국민은 18년 집권한 박 대통령의 서거도 충격이었지만 최 대행이 사용한 용어 중 ‘졸지에’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 대부분의 국민이 ‘갑작스러운 판국’을 의미하는 ‘졸지(猝地)’가 비속어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회의를 마치고 박진 외교부 장관과 이야기 하며 사용한 용어 중 ‘쪽팔려서’라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국제무대에서 대통령이 비속어를 사용한 ‘외교 참사’로 규정하는 등 정쟁화하고 있다.
외신도 덩달아 ‘토픽’성 기사를 실어 나르느라 분주하다. AFP통신은 윤 대통령의 ‘쪽팔리다’는 발언을 ‘lose damn face(체면을 잃다)’라고 번역해 보도했고, 워싱턴포스트는 ‘so humiliating(굴욕적인)’으로 소개했다. 블룸버그통신도 ‘embarassment(곤란한 상황)’로 번역했다.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욕설과 함께 이어진 ‘쪽팔리다’는 버젓이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표준어임에도 비속어로 취급당하고 있어 놀랍다.
‘쪽팔리다’는 일본인을 낮춰 부르는 ‘쪽바리’ 어원설을 비롯해 남성의 생식기 중 ‘불알’을 ‘쪽’으로도 불린다는 데서 생겨났다는 설, 여성의 비녀를 꽂은 머리털을 의미하는 ‘쪽’ 유래설 등 다양한 어원이 있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다. 옛날부터 ‘쪽’은 얼굴을 세는 단위였다. 지금도 책 페이지를 면 혹은 쪽이라고 부른다. 한자어 면(面)·안(顔)·용(容)은 모두 사람 얼굴을 뜻한다.
따라서 쪽팔리다는 ‘얼굴+팔리다’의 합성어다. 팔리다는 ‘팔다’의 피동사다. 즉, 얼굴을 자주 내밀거나 잘못 내밀어 ‘부끄럽다’ ‘체면이 손상된다’ ‘창피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관용어다. 얼굴을 세는 단위인 ‘쪽’에 사고 팔린다는 저잣거리 용어가 합쳐져서 비속어처럼 보인 것이다. 이왕이면 ‘얼굴 팔릴 수 있다’ 정도로 순화하면 좋은 말이다. 조정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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