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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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된다면

박선옥 논설실장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0-05 00:02:50

노벨상 시즌이 돌아왔다. 3일과 4일 노벨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 수상자가 발표됐고 곧 나머지 수상자도 발표될 예정이다.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스웨덴 유전학자 스반테 페보에게 돌아갔고, 물리학상에는 양자역학 분야 연구자인 알랭 아스페, 존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가 선정됐다.

이어 5일 화학상, 6일 문학상, 7일 평화상, 10일 경제학상 순으로 올해 수상자들이 발표된다. 6개 부문의 노벨상 중에서 아마 일반인들의 관심이 쏠리는 분야는 문학상과 평화상일 것이다. 문학은 소설이나 시 등 문학작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귀에 익은 작가의 이름이 나올 것을 기대할 것이며, 평화상 역시 국제 관련 뉴스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므로 그만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올해 문학상 후보에는 지난 8월 피습을 당한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를 비롯해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와 우리나라 고은 작가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벨상은 예측이 어렵다. 발표 전까지는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선정과정과 관련되는 모든 사항들은 향후 50년 동안 철저히 비밀로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거론되는 후보 중 단연 눈길이 쏠리는 인물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다.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 세계적으로 아마도 가장 많이 주목받고 또 응원을 받아 온 인물이 아닐까 싶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누가 봐도 승산이 뻔했던 전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국 우크라이나에 대한 애국심 하나로 국민의 가슴속에 국가와 영토를 지키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심어 준 지도자로 부각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은 푸틴의 야욕과 비교된다. 우크라이나 국민이든 러시아 국민이든 적과 맞서 자국 영토를 지켜야 한다는 국토 방위에 대한 의무감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두 지도자의 리더십과 명분의 차이가 결과적으로 전쟁에 임하는 국민의 태도에 큰 차이를 만들었다. 한쪽은 국가와 가족을 지키겠다는 대의명분이 뚜렷했으나, 다른 한쪽은 다른 나라를 침공하면서 ‘특수작전’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만들어 군대를 기만해 전쟁터로 끌고 갔으니 애국심이 생길 리 만무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는 부당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도록 자국 군대와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그의 리더십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유럽의회 의원들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이 올해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댄 스미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소장은 “이 같은 바람은 이해가 된다”면서도 “젤렌스키나 우크라이나 국민이 평화상을 수상할 가능성은 적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이유는 노벨위원회가 그간 평화상을 수여한 대상은 분쟁을 종식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평화상이 수여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도 노벨위원회가 밝히고 있는 수상자 선정 과정을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선정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6개 부문 노벨상 중에서 유일하게 평화상은 스웨덴이 아닌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선정한다. 이는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른 것인데, 노벨이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지는 않았다고 한다.

노르웨이 의회가 지명한 5명의 노벨위원회가 평화상 수상자를 결정하며, 시상식도 다른 부문과 달리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진행된다.

문제는 후보 추천 마감이 1월31일까지라는 점이다. 2월부터 3월까지는 후보 명단에서 유력한 후보를 추리고 이후 8월까지 선정 작업에 들어가서 10월에 수상자를 발표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월24일이므로 이때는 이미 후보 추천 마감일이 지난 후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추천자 명단에 들어갔을 리 없다. 당시만 해도 그는 운 좋게 대통령이 된 코미디언 출신 배우로 인식됐을 뿐이다.

전쟁 중인 국가의 수장이라는 점, 후보 추천 마감일이 한참 지난 후에 존재감이 부각된 점 등을 생각하면 젤렌스키가 노벨평화상을 받을 가능성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례와 규범에 얽매이기보다는 노벨상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더 무게를 둔다면 올해 파격적인 행보를 취하는 것도 의미가 깊을 것이다.

현재 전 세계는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죽음과 이별의 고통, 삶의 파괴, 에너지·식량난 등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면서 불안과 고통 속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 맞서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된다면 이는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글로벌 ‘빌런’에게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요청하는 사거리 300km ATACMS 수백 대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