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공포도 우크라 국민의 축구 사랑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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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의 한복판에서 프로리그 개막
우크라아니인들 삶과 희망을 재건
전황이 상당히 호전된 건 우연일까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06 08:30:28

러시아의 침공으로 7개월 넘도록 끔찍하고도 혹독한 전쟁 참화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8월 말 자국 프로리그인 프리미어리그(UPL)를 개막했다. 독립기념일을 하루 앞두고서였다. 러시아군으로부터 언제 공습을 받을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리그를 열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런 탓에 스탠드는 텅 빈채 무관중으로 치러졌고,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은 주심의 휘슬에 곧바로 방공호로 대피해야만 했다. 전쟁과 군사적 공습, 포격의 한복판에서 치러지는 역사상 초유의 시즌이었다. 리그에 참여하고 있는 14개 구단 가운데 러시아군의 포격이 집중됐던 마리우폴 지역의 FC 마리우폴 등 두 클럽은 리그에 복귀하지 못했다.

단순한 축구 경기 이상의 큰 울림

우크라이나의 명문 클럽인 샤흐타르 도네츠크 선수들이 폐허가 된 수도 키이우의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메탈리스트 1925 하르키우와의 개막전에서 청색과 노란색의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두르고 입장한 것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표시하고 여전히 전쟁 중인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함이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상으로 개막 선언을 대신했고, 첫 킥 오프는 절뚝이며 그라운드 위에 들어선 상이 용사가 맡았다.

개막전이 단순히 축구 한 경기 이상의 큰 의미와 울림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올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프로 축구리그가 결국 중단되어 아직도 전쟁을 겪고 있지만 전선을 지키는 군인들과 참화 속에서 신음해 온 국민에게 사기 진작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축구리그를 재개키로 결정한 것이다. 최전방의 장병들로부터 축구를 다시 시작해 달라는 요청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의 장기화로 재개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축구협회가 리그 재개에 적극 나섰다. 프로축구 리그를 재개한다는 것은 곧 그들의 삶과 희망을 재건하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희망 샤흐타르는 승승장구

1991년 우크라이나의 독립 이후 2021~22시즌은 처음으로 우승팀 없이 지난 4월에야 밀봉됐다. 당시 1위였던 샤흐타르(15승2무1패)는 올 시즌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진출권을 얻었지만 ‘안전한 일터’를 향해 떠난 외국인 주축 선수 상당수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샤흐타르가 올시즌 UPL 개막전을 치른 것은 우크라이나의 슬픈 역사를 한 몸에 걸머진 UPL의 대표적인 클럽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동부의 광산 도시인 도네츠크에 연고를 둔 샤흐타르는 8년 넘게 망명 상태에 놓여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사태가 돈바스 전쟁으로 비화하면서 친러 분리주의 반군 주도로 세워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에 도시가 통째로 넘어갔다. 샤흐타르는 홈구장이 있는 도네츠크를 떠나 6년간 르비우, 하르키우의 경기장을 전전하다 2020년 수도인 키이우에 정착했다. 안방 구장이었던 돈바스 아레나는 2014년 8월 폭탄 공격을 당한 뒤 아직까지 기능 상실이다.

그럼에도 자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샤흐타르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의 단골손님인 우크라이나의 명문 구단으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나 맨체스터시티(잉글랜드) 같은 거인을 꺾은 전력이 있고, 헨리크 미키타리안(아르메니아), 윌리안(브라질) 등 월드클래스급 선수를 발굴해 냈다.

무엇보다 유럽에서 가장 다난한 2010년대, 그리고 2020년대를 보낸 클럽이다. 샤흐타르는 유럽 클럽팀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 방탄 헬멧과 영유아 음식 등 물자들을 조달해 군과 민간에게 제공하는 등 국민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한 구단이다.

전쟁으로 지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

UCL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며 전쟁으로 지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고 있는 팀이 바로 샤흐타르다. 상대적 약체로 평가받았던 샤흐타르는 UCL에서 라이프치히(독일)를 4-1로 꺾었고, 셀틱(스코틀랜드)과 1-1로 비기는 등 선전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현재 자신들의 어깨에 걸린 사명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샤흐타르의 경기 모습을 담은 영상에 “우크라이나의 영광” “전쟁 중에도 자랑스럽다” 등의 댓글이 걸린 것만 봐도 샤흐타르에 거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기대가 제법 크다는 것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총성 멈춰 평화로운 축구 시절 왔으면

우크라이나의 전황은 상당히 호전됐다는 외신 보도가 들려온다. 리그가 시작된 이후에 최전방 장병들의 사기와 에너지가 충만해져 전황이 좋아진 것은 단지 우연일까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것이야말로 스포츠 아니 하나의 종교와도 마찬가지인 축구의 힘이 아닐까. 그들은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을 정도로 축구가 삶의 양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량의 인명 살상을 수반하는 전쟁의 공포도 우크라이나인들의 축구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축구를 계속하는 일은 곧 삶을 지키고 희망을 기다리는 투쟁이기 때문에 UPL은 예정대로 내년 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하루빨리 총성이 멈춰 그들이 평화롭고 안전하게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박병헌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