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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한전)이 천문학적인 적자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한전의 적자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전기요금을 급격하게 올리지 않는 이상 적자 탈출은 어려울 전망이다.
한전 적자의 원인으로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구조를 지목하기도 하지만 민간발전사에서 전력을 구매하는 비용을 갑자기 줄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전력은 석탄 발전 확대와 친환경 전환 속도 조절 등을 통해 적자 개선에 나섰지만 세계적인 트렌드인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만큼 거센 저항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전기세 한 달 8만원 올려야 적자 해결… 정부 지원도 어려워
한국전력은 2022년 10월1일부로 전기요금을 조정하기로 했다. 기존에 예정돼있던 기준연료비 잔여 인상분인 kWh당 4.9원에 더해 추가로 2.5원 인상을 결정하면서 전기요금은 kWh당 7.4원 오르게 된다. 이번 전기요금 조정으로 4인가구(월 평균사용량 307kWh) 기준 월 2270원가량 요금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전은 글로벌 에너지 위기로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 가격이 폭등하며 9월 전력 도매가격(SMP)이 kWh당 255원까지 급등해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므로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전기요금이 도매가격 인상분을 따라오지 못하면서 한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적자를 보는 늪과 같은 구도에 빠져있는 형국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전은 상반기에만 영업적자 14조3000억원을 기록했으며 8월까지 회사채 총 19조8000억원을 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전의 부채총계는 165조7987억원으로 재무 개선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한전이 적자 해소를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했지만 한전의 재무적 상황을 개선하는데는 역부족일 것으로 관측된다. 전기요금 인상분이 한전의 적자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김회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소속 의원이 한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이 올해 적자를 해소하려면 10월 kWh당 261원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 이를 4인가구 기준으로 적용하면 월 8만원 가량의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뜻이다. 올해 적자를 전부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4분기 손익분기점만 맞춘다고 해도 연료비 조정단가는 kWh당 50원을 인상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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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그래픽=임수진] ⓒ스카이데일리 |
kWh당 50원 이상이 아니더라도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추가 요금 인상은 정부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6월과 7월에 6%대까지 상승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8월 5.7%로 다소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이처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하락세에 접어든 시점에서 전기 요금의 추가 인상이 이뤄진다면 다시 물가가 상승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물가상승률이 0.1%p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선 전기 요금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월4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한전이 단기간에 적자를 해소하려고 하면 온국민이 엄청난 부담에 직면할 것”이라며 “자체 자금 흐름이나 외부자금 조달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며 대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적 자금 투입에 대해 추 부총리는 “법에 직접 보조금을 주지 못하게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전은 전기세 인상 외의 대책으로 보유자산 매각, 비핵심사업 조정 및 고강도 긴축 경영 등을 통해 향후 5년간 총 14조3000억원의 재무개선 목표를 수립해 이행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정승일 한전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성과급을 반납하고 1직급 이상 주요 간부들도 성과급의 50%를 반납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싸게 사서 싸게 사는 판매 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인 만큼 적자 해소에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 구입 가격 통제 표류… 해법은 신재생에너지 축소·석탄 발전 확대?
한전이 전기를 팔 때마다 적자를 보고 있는 것에 비해 민간발전사들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되레 증가하고 있다. 국회 산자중기위 소속 박영순 의원이 한전거래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의 전기 공급량은 2021년 전체 공급량보다 30% 적었으나 전기 판매 매출은 20% 상승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분석한 결과 7대 민간발전사는 올해 상반기 1조6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박영순 의원은 “한전과 발전공기업들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같은 공공재인 전기를 생산하는 민간발전사들은 최고의 수익을 벌고 있다”며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등 민간 발전 분야의 과도한 이익을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한전 실적 개선 대책으로 꼽히는 SMP 상한제는 직전 3개월간의 SMP 가중평균이 120개월간 상위 10% 이상일 경우 1개월간 SMP에 상한을 두는 제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월 SMP 행정예고했으며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민간발전사 및 재생에너지, 집단에너지 사업자들의 반발때문에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SMP 상한제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나는 만큼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는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당장 적자가 난다고 해서 민간발전사나 자회사에 떠넘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쉬운 방법만 찾으려고 하지 말고 한전이 왜 이렇게 됐는지부터 다시 따져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재생에너지에 따른 비용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국회 산자중기위 소속 한무경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이 신재생에너지 전력 구입비용으로 8조928억원을 지출했고 이 가운데 47%인 3조8343억원이 보조금인 것으로 나타났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전체 발전량의 6.5%에 그치는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확대되면 보조금도 늘어나게 된다.
윤석열정부는 8월 제10차 전력 계획 실무안을 공개하면서 재생에너지 목표를 30.2%에서 21.5%로 낮추고 원전 비중을 32.8%로 높이기로 했다. 2026년까지 25%로 오를 예정이었던 재생에너지의무할당제(RPS) 비중 또한 조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한전의 재정난이 심각하다고 해도 재생에너지 비율을 낮추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기후 변화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RE100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시대적 흐름에 뒤처져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기업이 ‘RE100’ 참여를 선언했으며, 글로벌 투자자들은 기업의 친환경 여부를 중요한 투자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을 축소하는 것은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다만 RE100 참여 기업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줄인다고 해서 RE100 달성에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스카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이미 해외 공장은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한 곳도 있고 기업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만 자체 생산하면 되기 때문에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당장 재생에너지만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프로젝트인데다 여러 가지 방안을 고려하면서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정책의 영향이 없다고는 못하지만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한편 한전은 최근 LNG 발전의 일부를 석탄 발전으로 대체해 연료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자구계획을 정부에 제출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석탄 발전량에 상한선을 주는 석탄발전상한제를 완화해 석탄 발전량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한전은 1조6000억원의 연료비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 567만t의 이산화탄소가 추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떠오른 탄소중립에 역행하는 행보라는 비판은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전 관계자는 “석탄 발전 확대는 재정난에 따른 단기적 조치이며 장기적으로는 당연히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가는 것이 맞다”며 “다만 신재생에너지는 정책적인 부분이고 한전은 집행기관이기 때문에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전은 석탄 발전량 확대의 장기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한전 관계자는 “현재 계획은 올해 말까지로 돼 있다”며 “이후로는 상황에 따라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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