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김동길 교수의 ‘DJ-盧-文 자살 촉구’ 발언 기억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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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金 낚시론’과 비교 안 될 용기... 그게 지식인의 책무
북핵 도운 이적행위에 책임 묻는 건 백 번 천 번 옳아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11 10:59:21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위독하다는 말을 처음 전해 들었던 건 늦봄 무렵이었다. 만 94세 연세 때문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퍼뜩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3년 전 냉면 모임 초대에 응하지 못했던 아쉬움이다. 생전의 김 교수와 자별(自別)하게 지낸 가수 조영남을 통해 연락받았다.

선약 때문에 불참했지만 나중에 들으니 그날 김 교수는 주특기인 영시(英詩) 낭송을 하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예전 이화여대 뒤 식당가를 지날 때 유리창 너머로 제자들에 둘러싸인 모습도 몇 차례 본 적 있다. 그 멋쟁이를 두고 보수진영의 원로라고 한다. 1970년대 함석헌·김지하 등과 함께 한때 재야인사로 분류되던 그가 훗날 확실하게 변신을 한 것인데 이유가 걸작이다.

“박정희의 유신체제가 워낙 튼튼하니까 우린 마음 놓고 비판했던 것이다.” 그 발언은 그가 타고난 자유주의자였음을 역설적으로 말해 준다. 내 가늠으론 김 교수는 87년 체제 이후 주사파 운동권이 사회 주류로 스며드는 걸 지켜보면서 민주화운동과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세상이 알 듯 87년 체제에는 양면성이 있다. 직선제 개헌과 함께 절차적 민주주의가 일단 완성됐다.

하지만 한국 사회 주류에 주사파 운동권이 합류한 분기점이 그때다. 그래서 이후 현재까지 35년을 ‘사실상의 좌우합작 시기’라고 부르는 데 나는 동의한다. 어쨌거나 고인은 1991년 강경대 명지대생 치사 사건 비하 발언을 하면서 좌파세력과 선을 그었다. 실은 그때가 한국 사회의 또 한 번의 분기점이었다.

공산권 몰락 이후 북한 소멸이 역사의 순리였지만 우린 정반대로 갔다. 주사파는 더 극성이었고 좌익세력은 연쇄적으로 권력 장악에 성공하면서 대한민국을 지금의 체제위기로 몰고 있다. 그 배경엔 문재인이 ‘사상의 스승’이라고 고백한 리영희의 표변(豹變)이 중요했다. 본래 마오이스트이던 리영희가 1~2년 침묵 끝에 김일성주의자로 돌아선 게 오늘날 비극을 만든 것이다.

운동권 눈치를 살피던 리영희는 변절자 소리를 듣는 게 두려운 나머지 종북을 택했다. 그래서 김동길 교수의 위상이 중요하다. 리영희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 김동길은 그만큼 학자의 양심에 충실했다. 앞선 말대로 그는 타고난 자유우파가 맞다. 한때 박정희와 대립했지만 이후엔 중심을 딱 잡았다. 그렇다고 그가 죄다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라고 말하면서도 전두환 대통령의 실체적 진실과, 그가 창출한 1980년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게 문제다. 왜 80년대를 이해 못하는가? 시야가 짧은 탓에 80년대야말로 현대사에서 산업화가 마무리된 결정적 시기라는 걸 채 파악 못한 것이다. 그렇게 손 놓고 있는 새 80년대 고지는 주사파가 장악한 지 오래다.

저들은 1972년 유신 선포 이후 박정희 사망까지 7년을 1차 유신이라고 부르고, 80년대를 2차 유신으로 딱지 붙이며 현대사 뒤집기에 온통 난리법석이다. 그런 와중에 나는 김동길을 위선적 리버럴리스트에 불과하다고 공격한 적도 있다. 그런 판단에 지금도 변함은 없지만, 김동길의 전투력은 만만치 않다. 특히 역대 좌파 대통령 셋을 잇달아 저격한 공로를 나는 높이 산다.

그건 엔간한 배짱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3김씨 낚시론’을 주로 기억하지만, 그것과 비교도 안 되는 업적이 좌파 대통령 3명 저격이다. 우선 김대중(DJ)에 대해서는 적국에 핵 개발 자금을 몰래 보내 준 죄로 “자살해야 마땅하다”고 생전 DJ에 촉구했다. 뇌물 논란에 시달리던 퇴임 직후의 노무현에게도 “당신은 자살이라도 해야 한다”고 당당히 지적했다. 다 아시듯 노무현은 북핵이 대남 공격용이 아니란 망언도 했던 인물이다.

급기야 김동길은 취임한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문재인에게도 “부디 자살만은 하지 말아 다오”라는 묘한 뉘앙스의 당부를 한 걸로 유명하다. 문재인의 실체를 일찌감치 파악했다는 뜻이다. 좌파는 그걸 저주라며 길길이 뛴다. 터무니 없다. 문재인 개인의 생명이 소중한가, 위험에 빠진 5000만 국민의 생명이 중요한가.

그렇다. 지식인이 소신 발언을 못한다면 그게 부끄러운 일이다. 더욱이 좌파 전직 대통령 3명은 단순한 정책 실패를 떠나 대한민국을 위태롭게한 과오를 저질렀다. 그게 북핵 개발을 돕기 위한 ‘의도된 실책’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김동길 발언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의 사후 더 많은 논의를 기대한다. 담론장에 성역은 없다. 하지만 좌파 무죄·우파 유죄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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