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골프 여제’ 소렌스탐의 아름다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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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좀 늦은 12살 때 골프 입문
캐디백엔 15번째 클럽인 멘탈 장착
이혼 이겨내고 지칠 줄 모르는 우승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13 08:50:42

얼마전 인천의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열린 LG전자 월드매치 골프대회에 ‘영원한 골프 여제’로 불리는 아니카 소렌스탐이 출전했다. 이 대회는 친선 위주의 자선 이벤트대회였다.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 미국의 크리스티 커 등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의 레전드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소렌스탐이 한국을 찾은 것은 무려 20여년 만이다.

LPGA투어 72승 거둔 롤 모델

유럽 골프강국인 스웨덴 출신의 소렌스탐은 여자 골프의 세계적인 롤 모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선수로서 활약할 당시 LPGA투어에서만 메이저 대회 10승을 포함해 72승을 거둬 ‘골프 여제’로 통했지만 2008년 필드를 떠났다가 14년간의 공백을 깨고 6월 제77회 US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를 통해 복귀를 선언하면서 ‘영원한’이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52살의 소렌스탐은 LPGA투어에서 8차례나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시즌 평균 가장 낮은 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베어 트로피를 6차례나 수상한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선수로 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공식대회에서 꿈의 타수라는 59타를 친 유일한 여성 골프 선수로 남아 있다. 게다가 14년간의 은퇴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역대 상금랭킹 1위(2258만3693달러·약 316억1700만원)를 달리고 있기도 하다. 그것도 2위인 캐리 웹(호주)과는 무려 200만달러 이상의 큰 차이가 난다. 한국 여자골프의 레전드 박세리가 11위(1258만3713달러)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소렌스탐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쉽게 알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어렸을 때엔 축구·스키 등 만능 선수

스웨덴 스톡홀름 근교 브로에서 태어난 소렌스탐은 남들보다 뒤늦은 12살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어린 시절에는 육상선수와 테니스 선수로 크게 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축구와 스키에도 소질을 나타낸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어려서부터 운동능력을 갖춘 데다 하체 힘이 남다른 덕분에 골프를 늦게 배웠지만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 IBM의 임원이었고, 어머니는 은행원으로 비교적 넉넉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부모는 소렌스탐과 세 살 어린 여동생 샬롯타에게 각각 골프 채를 사 주지 않았다. 자매가 골프채 세트를 같이 쓰도록 했고, 소렌스탐은 홀수 번호의 클럽, 동생은 짝수 클럽을 사용했다. 그들의 절약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렌스탐은 주니어 시절에 수줍음을 유독 많이 탔다. 이런 성격이 훗날 프로골퍼가 되어 미국 전역과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투어를 뛰느라 외향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스웨덴에서는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수많은 관중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게 관례로 돼 있었는데 그는 충분히 우승할 실력을 갖췄지만 일부러 퍼팅을 놓치면서 우승을 회피했을 정도였다.

미국의 골프 명문 애리조나대학으로 유학을 가면서 그의 골프 인생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대학 시절 7관왕에 오르며 발군의 실력을 뽐냈던 소렌스탐이었지만 정작 LPGA 퀄리파잉(Q)스쿨에서는 만만하게 여긴 탓에 1타 차로 탈락했고, 유럽여자골프투어(LET)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해야 했다. 이때의 실패가 훗날 세계적인 선수로서 명성을 날리는 데 보약이 된 셈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골프 여제’ 등극

1994년 LPGA 투어에 발을 들여놓은 소렌스탐은 그해 신인왕을 차지했고, 2002년에는 역대 최다인 무려 11승을 기록하는 등 은퇴할 때까지 늘 우승후보로 손꼽히며 ‘골프 여제’로 군림했다. 2005년 이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골프 실력은 변함이 없었다.

2008년 38살의 나이로 은퇴할 당시에도 우승을 거머쥔 그가 월등한 기량을 과시한 것은 타고난 재주에다 끊임없는 체력훈련 등 자기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부터 자신이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퍼팅 수·그린적중률·드라이버 비거리 등 모든 기록을 컴퓨터에 저장 관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외모를 갖고 있었지만 몸에 밴 승부욕으로 무장된 강한 멘탈이 그의 캐디 백에 늘 꽂혀 있었다. 강한 멘탈은 15번째 클럽이라고 불릴 정도다. 골프경기에서는 14개의 클럽만 사용토록 규정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골프선수들은 스윙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근력운동을 기피했지만 이를 과감히 깨뜨린 주인공이 소렌스탐이다. LPGA 최고 선수였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역기 들기와 균형 운동을 포함한 운동 프로그램을 통해 드라이버 비거리를 20야드 이상 늘릴 수 있었다.

경기에 나서지 않으면 집 근처 스포츠센터에서 살다시피 했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280야드 이상으로 크게 늘면서 그가 눈을 돌린 게 남녀 성대결이었다. 소렌스탐은 2003년 5월 PGA투어 콜로니얼 골프 토너먼트에 초청되었지만 높은 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자식에게 도전정신 보여 주려 복귀

육아에 전념한다는 이유로 필드를 떠났지만 조국 스웨덴에 청소년을 위한 기금을 기부한 데다 무료 골프 아카데미를 설립했고, 골프장 설계사업을 벌였던 그였다. 은퇴 후에도 늘 골프와 함께 한 '여제'였다. 첫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정도로 성장하면서 골프선수로서의 꿈을 다시 지폈다.

골퍼로서 모든 걸 다 이뤘지만 자식들에게 엄마로의 도전 정신을 몸으로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다. 1월에는 LPGA 투어에서, 6월엔 US여자 오픈에서 30살이나 어린, 딸뻘되는 선수들과 경쟁을 벌였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그에게 우승은 더 이상 중요치 않다. 두 다리로 걸어다닐 수 없을 때까지 필드에 설 것이라는 소렌스탐의 성취욕과 도전정신이 아름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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