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친일·반일 프레임에 죽창가를 부를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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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국익에 전혀 안 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키워
양국 미래 진정으로 걱정하는 선량한 민간이 나설 때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18 09:18:46

추락하는 일본 경제의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에 세계 경제 2위 자리를 중국에 내준 데 이어 금년엔 독일에 3위 자리를 내줄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의 연이은 금리 인상과 이로 인한 ‘킹달러’ 추세에도 일본 정부가 지속해서 엔저(円低)를 용인한 참혹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수출을 늘려보겠다는 의도가 먹혀들지 않고 우리와 유사하게 13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 중이다. 하물며 31년 연속 세계 최대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대외자산(400조엔)도 크게 휘청거린다. ‘잃어버린 20년’에 ‘늙어버린 10년’이 더해지면서 일본의 지난 30년은 악몽과도 같다. 경제 회생을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지만 무너지는 경제에 백약이 무효인 셈이다.

엔저의 후폭풍은 이뿐만 아니다. 일본의 1인당 명목 국민소득도 계속 하락 추세다. 물가를 반영한 구매력 소득 평가에서 이미 2018년 한국에 밀리더니 이제는 명목소득에서도 한국에 역전당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점점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최근 원화 가치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어 시기가 올해가 될지는 연말에 가봐야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발표 기관마다 수치의 차이가 있고 역설적으로 대만이 우리를 추월한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일본은 지난 10년 사이 약 20%의 국민소득이 감소하면서 30여 년 전 4배나 차이가 나던 소득 격차와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이다. 한편 미국 USA투데이와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이 조사·발표한 2022년 세계 국력 부문 평가에서도 한국이 일본(8위)을 제치고 6위에 올라 이 정도 되면 일본의 국력은 쇠퇴하고 한국은 상승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할 수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쉴 틈 없이 기승을 부린다. 심지어 일본인의 머리 위를 날아가면서 열도를 공포와 전율에 휩싸이게 한다. 북한의 도발은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부추기고 있는 신(新)냉전 기류와도 무관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가 뒷배가 되어 북한 편을 들어주고 있어서 더 과감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이 재무장을 통한 군사 대국화 시계추가 빨라지게 하고 있으며, 홀로 감당하기 벅찬 미국도 이를 공개 지지하고 있는 판국이다. 경제력이 급격히 퇴조하면서 군사력마저 없으면 보잘 것 없는 보통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동이다. 중국의 대만 위협까지 포함하여 동북아의 위기가 커질수록 일본의 재무장은 더 탄력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이 와중에 국내에서는 한·미·일 연합 군사 훈련에 대한 정치권의 충돌이 가관이다. 세상 돌아가는 정세에 눈과 귀를 닫은 채 오직 정치적 유·불리에 집착하여 여론을 선동한다. 다시 친일(親日)·반일(反日) 프레임을 꺼내 들고 철 지난 죽창가를 부르면서 국민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한반도에 위기가 고조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로 경제적 불이익까지 닥치고 있는 마당에 상식과 비(非)상식을 뛰어넘어 국론을 분열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의 존망마저 위태롭게 한다. 국제 정치나 경제는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대응이 아닌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요구된다. 한국인에게 태생적으로 붙어다니는 일본 극복 혹은 타도라는 꼬리표도 무모한 집단의 포퓰리즘적 대응으로 외견상 휘파람을 불지 몰라도 내면의 공허함은 더 깊어진다.

코로나19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해외여행도 본격 재개될 조짐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선수를 치고 나왔다. 해외 관광객 유치가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낙수를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 2년 반 만에 재개된 일본 무비자 관광에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발길을 재촉한다. 삽시간에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왜 이토록 일본 관광에 열을 올릴까? 세계 곳곳을 다녀봤지만, 일본처럼 가성비가 좋고 만족도가 높다는 이유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지난 5년간 계속된 양국 정치권의 냉랭한 분위기가 아직 풀리지 않고 있지만 민간 레벨에서는 꾸준하게 연결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요즘 일본 내에서 한류 열풍도 다시 점화됐다. 한국 문화는 물론이고 내구재 상품에 이르기까지 일본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은 고무적인 현실이다.

몇몇 지표로 일본을 이겼다고 자만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행위다. 국가 명목 GDP 규모로는 우리가 아직 일본의 40% 수준에 불과하며, 대외 순자산은 일본이 우리의 7배에 달하는 거액 자산가다.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도 3만3000개에 이르며,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는 강소기업의 수도 1000개 이상이다. 첨단기술 보유도 우리는 고작 40여개이지만 일본은 330개가 넘는다. 정치권이나 공공 부문과는 판이하게 민간 레벨에서는 한·일 간의 본격적인 협력이 재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의외로 높다.

우리만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대다수 일본 국민의 바람이기도 하다. 사리분별력이 떨어지는 정치권이 아닌 양국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선량한 민간이 나서야 할 때다. 어려울수록 이웃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국뽕과 친일, 혐오를 거둬낸 냉정한 현실 직시가 국익이고 명실상부한 일본 극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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