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세월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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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국민 생명·안전 보호할 헌법상 의무 있어
서해 공무원 사건, 세월호보다 중대한 헌법 위반

이동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19 09:43:49

2020년 9월에 있었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반전이 있었다. 6월 해양경찰청과 국방부가 월북을 인정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하는 바람에 관련 기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가 실시됐는데 14일 마침내 결과가 발표됐다. 눈에 띄는 것은 자진 월북 결론을 뒤바꿀만한 새로운 사실관계가 밝혀졌다는 점이다.

원래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가 2020년 9월22일 21시경 피살·소각되었을 때가지만 해도 실종 원인은 ‘해상 추락’이었다. 그런데 피살 이후부터 국가안보실에서 월북 가능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대통령이 직접 국방부의 시신 소각 발표가 너무 단정적이니 재분석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후 해경이 나서 조사하더니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이 내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 발표는 신뢰를 얻지 못했었는데 실종 지점이 북한에서 가까운 연평도 북단도 아닌 남쪽인 소연평도 부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북한 땅까지 헤엄쳐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먼 거리다.

결국 정권이 교체되고 6월에 해경과 국방부가 종전 입장을 번복했고 감사가 시작됐다. 이번 감사에서 아직 이대준 씨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안보실장 등 주요 간부들이 퇴근한 점, 국민 구출을 위한 국방부나 해경 차원의 구조 준비가 전혀 없었던 점, 이대준 씨가 피살된 다음날 새벽에 국방부와 국정원이 상당량의 첩보를 삭제한 점 등이 새로 드러났다. 이대준 씨가 처음 북한군에 발견되었을 때는 월북 의사 표명도 없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충격을 준 것은 월북의 제일 유력한 증거였던 이 씨의 구명조끼에 ‘한자(漢字)’가 쓰여 있었고 이 조끼가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 중국산인 점이다. 즉 구명조끼가 나중에 어디선가 입혀졌을 가능성이 있는데 이 중요한 정보를 해경청장은 “나는 안 본 걸로 할게”라고 외면했다고 한다. 범죄심리전문가 7명 중 2명만이 월북 가능성을 언급했는데도 월북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니 기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감사원이 관련자들을 직무유기,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하니 머지않아 형사책임이 밝혀질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사건을 개별 공무원에 대한 형사사건으로만 보아서는 안 되고 국가가 과연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할 헌법상 의무를 다했는지 측면에서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권은 생명과 신체의 안전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 조항에서 생명권·신체의 안전권과 이를 보장할 국가의 의무를 도출하고 있다.

이러한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가 헌법적으로 문제된 사안으로 우선 2008년 광우병 사건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대한 보호의무를 다했는지를 심사할 때에는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하였는가 하는 이른바 ‘과소보호 금지원칙’의 위반 여부를 살펴야 한다고 보았다.

즉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거나 비록 조치를 취했더라도 이것이 법익을 보호하기에 전적으로 부적합하거나 매우 불충분한 것이 명백한 경우에만 국가의 보호의무의 위반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최대 보호’나 ‘적정 보호’를 기준으로 삼으면 예기치 못할 사고나 재해에 대해서도 전부 국가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인데 이는 아무리 국가라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과소보호 원칙’을 기준으로 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원칙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적용됐었다. 세월호 사건 때 박 전 대통령이 7시간 동안 관저에 머무르며 전화로 원론적인 지시만 했다는 것도 탄핵사유였지만 헌법재판소는 박 전 대통령의 대응조치가 미흡하고 부적절한 면은 있었지만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으로까지 인정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서해 공무원 사건에서는 국가가 과연 ‘과소보호’ 의무라도 다했는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국가가 실종자의 위치를 확인한 2020년 9월 21일 16시경부터 다음날 21시경 피살되기까지 무려 29시간이 흘렀는데 그동안 국가가 북한에 대해 아무런 보호 요청을 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한 것이라고는 피살 이후에 내부정보망에서 관련 첩보를 100건 넘게 삭제하고 자진 월북으로 결론을 몰아간 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호 사건을 디딤돌로 출범했던 더불어민주당 정부하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지 않는데 형사법뿐 아니라 헌법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헌법상 국가의 국민 생명보호 의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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