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화두’ 바꾸지 않으면 한국호號 미래 암울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김상철의 글로벌 포커스

밥그릇만 챙기려는 정치판, 국가 미래 아젠다에 집중해야
위기에 언론 앞장서야 하는데 리더십·전문성 보이지 않아
화제 전환 골든타임 놓치면 결국 국가는 내리막길로 전락

김상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31 11:35:47

자고 일어나면 마치 벌집 쑤셔놓은 듯이 나라 전체가 온통 뒤죽박죽이다. 대다수가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면서 현실로 닥친 난국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국가라는 하드웨어는 이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곳으로 질주한다.

정치판은 국가의 흥망이나 국민의 생존에는 관심이 없고 연일 서로 밥그릇만 더 챙기려는 난장판을 벌인다. 정부는 정치의 볼모가 되어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지 오래다.

사회의 공기(公器)이면서 여론을 주도한다는 언론까지 말단지엽적이면서 말초적인 화제에 함몰되어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다. 선량한 국민까지 질퍽한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면서 모두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치지 못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듯하다.

사회가 건전하고 생산적인 국가가 되려면 우리 내부의 중심 화두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과거 답습적이거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이면서 국민의 일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정치하는 사람들을 더 기고만장케 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 왜곡을 부채질한다.

둘째는 각종 부정부패, 비리와 관련된 범죄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선정적 보도를 하거나 민감해 하기보다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미디어가 나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함량 미달의 패널들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시답잖은 궤변을 늘어놓는 걸 듣고 있자니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축적해 놓은 국가적 저력이나 사회적 자본이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최근 수년간 우리는 미래가 아닌 과거로 역주행을 하고 있다. 요즘 국내 언론의 뉴스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신물이 나고 거기에 집착하면 살고 싶은 욕구가 반감한다는 볼멘 목소리가 분출한다. 점점 더 사회의 불신(不信)은 깊어진다.

간혹 다른 나라의 언론을 기웃거려 보기라도 한다면 우리 내부가 얼마나 무지하고 철딱서니 없는 이슈에 집착하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지 확연하게 실감할 수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경제 상황에 대해 실시간으로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처 방안을 두고 다양한 패널들이 나와 견해를 밝히고 향후 대안을 제시한다.

흔히 국가의 위상을 평가할 때 그 나라의 정치 혹은 언론의 수준에 잣대를 들이댄다. 아무리 경제적 성취가 높다고 하더라도 이 부문에서 점수가 후하지 않으면 여전히 수준 미달의 국가라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 정치나 언론의 수준이 삼류 혹은 사류라고 하면 국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이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거들고 있지나 않은지 되돌아볼 일이다. 정상적인 보통 국가 혹은 선진국에서는 이렇듯 언론이 매일 정치 혹은 범죄 이슈로 온통 도배되는 모습을 극히 보기 힘들다.

언론은 국민적 관심사가 온통 그곳에 있다고 항변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주어진 골든타임을 무책임하게 흘려보내고 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안을 화두로 정리하면 셀 수 없을 정도다. ‘킹달러’ 시대에 직면하면서 국내 경제가 겪고 있는 고통과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급선무다. 돈맥 경화로 인한 시장 자금 경색이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의 젖줄인 무역은 수개월째 적자로 반전되면서 좀처럼 흑자 전환의 기미가 나타나지 않는다. 제조업 업황도 2년 반 만에 최악으로 치닫고 있고, 내수도 계속 부진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신(新)냉전과 탈(脫)세계화의 물살이 거세다. 최근에 제20차 당대회에서 결정된 시진핑 체제 3기 출범이 우리에게 어떤 도전으로 다가올 것인지 역시 흘릴 수 없는 이슈다. 미국의 보호주의와 기술과 원자재를 매개로 한 동맹 재편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저출산·고령화, 지방 소멸, 연금 개혁, 농촌 피폐화 등 미룰 수 없는 문제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화두를 바꾸지 않으면 한국호(號)가 난파하지 않고 순항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려고 하지 않는다. 위기가 분명한데 위기의식은 실종되고 자포자기하면서 그냥 주저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방관자, 강 건너 남의 집 불구경하는 나그네와 같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선순환이 생겨나기 만무하고 악순환만 반복된다.

급제동을 걸지 않으면 국가는 파행하고 결국 여기가 정점임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누가 화두를 바꿀 것인가? 미디어가 앞장서야 하는데 우리 언론에선 그런 리더십이나 전문성, 도덕적 우월성 등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만연한 반(反)지성주의 혹은 극단적 분열주의를 극복해 낼 수 있는 화두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구촌에서 우리가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국력은 후퇴한다.

김상철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