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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진욱이 쇼핑백을 들고 파우더룸을 드나든 이유가 이제 이해가 되었다.
양치 물컵과 헤어드라이어까지 챙기는 괴한의 세밀함도 보통은 아니었지만 그걸 세팅해 놓은 진욱의 용의주도함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선우가 대표실 파우더룸에서 빗으로 머리를 빗는 일은 거의 없었다. 헤어드라이어는 당연히 원래 없던 물건이었다.
“그런데 CCTV가 있는 걸 알았을 텐데? 아니 그리고 파우더룸엔 CCTV가 없는데 어떻게?”
“저 녀석, 미술관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게 뭔지 알아? 전원 차단이야. 당연히 CCTV도 차단된 거고.”
“그럼?”
“차단할 줄 알고 있었으니 다른 방식의 전원을 따로 연결해 둔 거지. 당연히 마이크로 카메라까지 장착해 놓고.”
그래서 쇼핑백을 들고 파우더룸을 다녀가던 날 며칠 파우더룸을 쓰지 말라고 했던 거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오전 진욱이 쇼핑백을 들고 다시 왔었다. 파우더룸을 다녀가면서 이제 써도 좋다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 생부라는 남자는 자기 친자식 유전자와 대조 검사를 했다는 거고, 그래서 나를 자기 자식이라 여기게 됐다. 이거죠? 그럼 두 가지 질문할 게요.”
“그 사람은 지금 너한테 위협적인 인물이야. 나, 이진욱과 만나는 여자니까, 너를 볼모를 나를 맘대로 흔들려고 하는 사람이니까. 하나는 답이 됐지?”
생부라는 자가 결국 진욱을 위협하는 자라는 뜻이었다.
“그가 내 생부라고 생각하는 요인은 뭐죠? 나하고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된 이유가?”
“그분이 그분이야. 나소선 화가 마음을 흔들었다던 그분.”
그럼 한 가지 질문이 더 생긴다. 그분 자식의 유전자가 담긴 개인 물건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구했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우는 묻지 않았다. 그건 중요한 부분이 아닌 것 같았다.
“내 아내야. 그분 딸이. 물론 지금 같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결국 장인되는 사람이 진욱을 맘대로 어떻게 해보려고 협박을 하고 위협을 준다는 의미였다.
“그 사람이 엄마의 숨겨진 남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리고 내가 정말 그 사람 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두 번째 질문에 먼저 답을 하자면 은선우가 그 사람의 친자인지 아닌지는 몰라. 지금 중요한 건 그분의 딸이어야만 해. 그리고 숨겨진 남자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이 상황과는 또 별개니까.”
진욱은 한참 생각하는 듯 보였지만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선우 역시 더 묻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눈앞에 일어난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했다. 그리고 감당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었다.
진욱은 선우를 보내고 불 꺼진 사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정숙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아무래도 이건 말해야겠다고 털어놓는 그 이야기를 들으러 밤중에 그곳으로 차를 달리지 않았더라면. 어마어마한 진실에 다가가는 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글: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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