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의 진면목 과시한 프로야구 MVP 김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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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데뷔 초기 ‘에드민턴 키즈들’에 밀려
최초의 대타 끝내기 역전 3점 홈런포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걸 직접 입증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1-17 10:47:33

프랑스어 ‘베테랑(veteran)’은 어떤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해 기술이 뛰어나고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다. 단순히 경력이 길거나 나이가 많다는 느낌을 넘어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과 역량을 인정받는 전문가로서 오랜 경험을 쌓았다는 뜻이 강하다.

일본의 여류작가인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베테랑의 어원이 등장한다. 로마제국 군인들은 20년 가까이 복무한 뒤 마흔 살 즈음에 퇴역을 했고, 그중에서도 부대 운영 및 작전 수행에 필요한 여러 역량을 두루 갖춘 퇴역 군인을 ‘베테라누스(veteranus)’라 불렀다고 한다.

베테랑, 스포츠세계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

‘오래됨(old)’을 뜻하는 라틴어 ‘베투스(vetus)’에서 파생된 말로, 후대로 건너오며 베테라누스를 거쳐 베테랑으로 간소화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단어가 감동을 주는 것은 설명할 때 꼭 포함되는 나이 때문인 듯하다. ‘경험이 풍부한 퇴역 군인’을 지칭하는 베테랑은 스포츠 세계에서도 자주 쓰이는 단어 중 하나다. 오랜 기간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유지한 선수들을 존중해 쓰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경험과 실력에서 우러나온 리더십으로 후배 선수들을 이끄는 존재이자 경기 중 결정적인 플레이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동양 문화권에서는 중국 후한시대의 노병 마원 장군의 노당익장(老當益壯)이 이에 해당되는 말일 게다.

이러한 베테랑의 진면목을 보여준 인물이 얼마 전 끝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에서 맹위를 떨친 김강민이다. 그는 팀 창단 2년 만에 인천 SSG 랜더스에 영광의 우승을 안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올해 나이가 만 40세로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최고령인 김강민은 가장 빛났고, 가장 뜨거웠다는 데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8타수 3안타 2홈런 5타점의 대활약을 펼친 그는 7전 4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MVP(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고 당당했다. 40세 1개월 26일 나이에 한국 시리즈 역대 최고령 MVP였다.

대타로만 나섰지만 기대 이상의 활약

김강민은 햄스트링 부상 중이었고, 나이 탓에 주로 대타로만 나섰다. 그래도 제 역활을 충분히 해냈다. 아니 기대 이상이었다. 김강민은 한국시리즈 1차전 5-6으로 끌려 가던 9회 대타로 나와 극적인 동점 솔로 홈런을 때려 냈고, 3차전에서도 대타로 나서 9회 대량 득점의 물꼬를 트는 적시타를 터뜨렸다. 결정적인 활약은 5차전에서였다. 팀이 2-4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 말 1·3루에서 대타로 나서 좌측 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역전 3점 홈런을 터뜨려 영화같은 순간을 야구팬들에게 선물해 주었다. 40년 역사의 한국 시리즈 역대 최초의 대타 끝내기 홈런이자 KBO리그 역사상 포스트시즌 최고령(만 40세 1개월 26일) 홈런 신기록이었다.

대구 출신의 김강민은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SSG 랜더스의 전신)에 의해 지명을 받았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황금세대로 꼽히는 2000년 에드민턴(캐나다)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멤버들인 추신수·이대호·정근우·김태균 등 1982년생 또래들에 밀려 그 출발이 한참 늦었다. 김강민은 에드민턴에도 가지를 못했다. 원래 우완 투수 출신인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였다. 외야수로 전향한 뒤부터 타격에서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2010년 외야수 골든 글러브와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에 승선했지만 활약이 너무나 뛰어난 동기들에는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연봉은 팀내 평균에도 크게 못미쳐

팀 내에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좌완 정통파 투수 김광현·추신수, 주장인 한유섬 등 고액 연봉자가 수두룩하고,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SSG다. 김강민의 연봉(1억6000만원)은 SSG 팀 평균(2억7044만원)에도 한참 모자라지만 그 누구도 못한 큰 일을 해낸 셈이다. 지난해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적게 책정되었을 법하다. 흔한 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한국시리즈에서 단적으로 보여준 그다.

또래들과 후배들이 하나둘씩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지만 김강민이 불혹의 나이가 넘도록 여전히 그라운드를 지키고 있는 것은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올 시즌에도 햄스트링 부상으로 한 달 넘게 1군에서 말소돼 재활에 매진했지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섰던 그였다. 시즌 내내 거의 같은 체중을 유지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로 만들어진 훈련 루틴을 하루도 빠짐없이 소화한다. 이러한 자기관리 덕분에 김강민의 몸 상태는 현재 나이보다 4~5살은 젊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철저한 자기관리 있었기에 선수생활

‘황금세대’ 대부분이 흐르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스스로 마감했다. 강한 자가 끝까지 살아남는 게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는 격언을 김강민이 멋지게 입증했다. ‘에드민턴 키즈들’보다 더 우수하고 강하다는 걸 보여준 셈이다. 프로야구 최고령인 김강민이 내년 시즌에도 그라운드를 밟을 것은 확실하다. 야구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보다 멋지게 장식하기 위해 한국시리즈에 나섰던 그였다. 그가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계속할지는 모르지만 부상없이 더욱 건강하게 롱런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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