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부작위 살인’ ‘생매장’ 주장과 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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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주관 기자회견에서 ‘부작위 살인죄’ 단정은 지나쳐
민변, 당파성은 버리고 법률가의 객관성 견지해야 할 것

이동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1-30 11:28:12

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주관으로 이태원 참사 사망자 유족들의 합동 기자회견이 있었다. 정부에 대한 유족의 요구사항은 진정한 사과, 철저한 책임규명, 피해자의 참여와 소통 보장, 인도적 조치 적극 지원, 추모시설 마련, 2차 가해 방지 대책 마련 등이었다.

하루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살이 아닌 이상 누구라도 붙잡고 책임을 묻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클 것인데 가장 책임이 큰 경찰이 사고 이후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 매우 실망스럽다.

신속한 수사로 유족의 아픔을 빨리 씻어줘야 할 경찰이 참사 한 달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수사결과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검수완박’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대형참사범죄에 대한 수사권이 모두 경찰로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정작 최고의 수사 능력을 가진 검찰이 수사를 하고 싶어도 못한 채 그저 지켜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가 신속하게 나오지 않으면 그 틈을 노리고 국가에 대한 지나친 불신과 책임 전가가 생겨날 수도 있다. 검찰이 직접 수사했던 세월호 사건 때도 그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민변 주관 기자회견에서 그런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한 사망자의 어머니가 이 사건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 ‘생매장’이라고 단정한 것인데 전문은 다음과 같다.

“법을 공부한 적은 없지만 이 사건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 사건’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158명을 생매장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동대처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단 한 명의 희생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 확신합니다. 용산구청장·용산경찰서장·경찰청장·서울시장·행정안전부 장관·국무총리 자식들이 한 명이라도 그곳에서 ‘압사당할 거 같다’고 울부짖었다면 과연 그 거리에서 설렁탕 먹고 뒷짐 지고 걸어갈 수 있었을까요. 부작위 살인죄 적용해 형사 책임 지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법을 공부한 적이 없다는 어머니가 ‘부작위’란 용어를 스스로 알고 썼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기대되는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부작위’나 적극적인 행위인 ‘작위’같은 용어는 법학 이외 다른 분야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법학에서도 실무가 아닌 강학상의 용어다. 그래서 이 표현은 법률전문가가 주입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범죄는 폭행·협박 또는 기망 같은 작위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부작위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데 형법 시간에 흔히 드는 사례가 영아의 엄마가 젖을 먹이지 않는 부작위로 영아를 살해하는 것이다. 이 엄마가 영아에게 젖을 먹이지 않은 부작위는 적극적인 작위로 영아를 죽인 것과 동일하게 평가될 수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 교사가 몸값을 노리고 부잣집 아들인 자기 제자를 납치해 감금하다가 숨지게 한 ‘주교사 살인사건’은 아주 오래된 부작위에 의한 살인 사례이다. 가장 최근에는 수영을 잘 못하는 남편을 계곡에서 다이빙하도록 몰아간 후에 구조하지 않아 숨지게 한 ‘가평 용소계곡 살인 사건’이 있었다.

이태원 참사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단정한다면 이는 경찰이 위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하지 않은 부작위로 청년들을 살해했다는 것이 된다. 물론 경찰 수뇌부가 직무를 유기한 부작위 정황은 드러났다. 사고 발생 몇 시간 전부터 여러 건의 신고가 있었는데 이 어머니 표현처럼 경찰서장이 ‘설렁탕 먹고 뒷짐 지고 걸으며’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직무유기죄로 볼 수는 있어도 살인죄로까지 볼 수는 없다. 범죄가 성립하려면 이를 범하려는 의사, 즉 고의도 필요한데 당시 경찰 관계자들에게 이태원 축제에 모인 청년들을 구조하지 않는 ‘부작위’로 ‘생매장’해 죽이려는 고의가 있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살인죄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지나치다는 것이다.

유가족의 아픈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상황을 과잉 규정하면 책임의 상대방인 정부가 지나치게 방어적이 되도록 몰아 갈 수도 있다. 정부에 적대적인 소수 운동가들이야 이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정작 유가족들은 결과적으로 고통만 받게 될 것이다.

물론 민변이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간다고 의심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럴 리는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법률가 단체인 민변 주관 기자회견에서 살인죄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민변이 격한 심정의 유족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켰어야 한다고 본다.

민주화 과정에서 민변이 보여준 공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시절에는 임기 4년째가 되어서야 입법 성과를 평가할 정도로 권력 비판에 무뎠었다. 그런 민변이 새 정부에 대해서는 불과 100일 만에 성과를 비판했을 정도로 정파적인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부디 이태원 참사 유족 지원에서는 당파성을 버리고 법률가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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