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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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둬 놓은 신념이 자타를 죽이는 독버섯임을 알아야
측정 안 되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몸무게가 있을 수도

김성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02 14:30:32

그는 좋은 사람이다. 방금도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근무 중에 옆지기가 “담배 한 대 태우고 올 테니 이것 좀 부탁해”라고 슬그머니 일을 떠넘겼다. 동료의 컴퓨터 모니터를 보니 ‘야간인력 공고’ 기안문이 작성 중에 멈춰 있다. 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가 담배를 뽑아든 동료의 손에 시선이 가는 순간, 선선한 표정을 짓는다. 잘 다녀와.

좋은 사람도 많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자기 만족, 자기 긍정은 그 자체로 선한 의지 같다. 자신이 좋은 사람인 덕분에 주변 칭찬을 독차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누군가 스쳐가는 눈빛에도 눈치를 보게 된다. 지금 내 마음을 들키기라도 했나? 그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억울함이나 분노 따위로 가득 채워진 물풍선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마음의 무게가 몸의 무게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다. 다른 몸무게가 있는 듯하다.

소위 ‘착한 아이 증후군’과도 유사한 ‘좋은 사람 신드롬’은 타인의 요구나 제안을 거절하게 될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 따위에 노출될 수 있다. 차라리 내 몸을 더 쓰고 말지 그 고통을 맞닥뜨리기 싫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관계적 타이틀을 상실하는 순간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 할까 봐 두렵고 외톨이가 될까 봐 두려울 수 있다. 그의 무의식적 구호는 ‘아니야!’다. ‘아니야, 나도 하기 싫어!’이다. 그런데? 하고 있다!

어느 특정인에게만 ‘좋은 사람’도 있다. 가정 내에서는 ‘부모 자녀’ 간에 흔히 나타나지만 정치·사회 현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어느 특정인, 특정 집단에 대해서만 ‘좋은 사람’ 또한 또렷한 특징이 있다. 반드시 그는 ‘배격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양산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은 이런 관계에도 적용된다. 이념이나 철학이 자신과 친근한 아군에게는 높은 산 같은 ‘바람막이’가 된다. 자신과 다른 군집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거나 적대시한다. 이것은 개인에게도 정확히 적용된다.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 질문이 안 좋다. 좋은 사람이 아니길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로는 ‘난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할 수 있지만, ‘좋은 사람’ 되는 것을 포기하기 어렵다. 당신의 내면에 갱엿처럼 달라붙어 있는 그 욕구는 다름 아닌 ‘인정욕구’의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

현명한 사람은 그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욕심임을 직시한다. 왜? 자신은 애완 강아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라는 존재감’을 기반으로 생명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표정과 마음이 동일한 사람으로 살기가 쉽지 않다.

당신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서먹한 사람’ ‘아닌 사람’ ‘나쁜 사람’ ‘별난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비유컨대, 집에서는 잘 훈련된 리트리버 강아지, 직장의 부서에서는 킬리만자로 정상의 고독한 표범, 상사에게는 살랑거리는 고양이, 동창회에서는 마구마구 떠벌이…. 이렇게 펼쳐 놓고 보니 보이는 게 있지 않은가. 나의 삶이야말로 주변 조건에 따라 수시로 표변하는 자연의 모습, 그 자체다. 구름이 그러하듯.

자기 관찰은 그런 점에서 내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오늘 하루,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변해 왔던 생각이나 감정을 백지에 적어 보기만 해도 환히 드러난다. ‘아침-뻐근함, 세수할 때-피로감, 출근길-조급함, 회사 사무실-훈훈함….’ 이렇게 놀이삼아 심리 기록을 해 보면 알아지는 게 있다. ‘나는 주변 환경에 따라 계속 변하는구나.’ ‘같은 사람에게도 늘 같은 마음은 아니구나.’ ‘나는 나의 내면과 연결되기도 하고 단절되기도 하는구나.’

마이클 A. 싱어는 저서 ‘상처받지 않은 영혼’에서 “자연 재해를 극복해 온 인간들은 물리적 안전보다 심리적 안전을 지키는 데 더 힘을 쏟게 됐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옷이나 식생활 걱정이 없다 보니 동료들 속에서 너무 크게 웃었거나, 상사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닐까 하는 과민한 걱정을 만들게 되고, 그로 인해 자기 안으로 ‘웅크려들게’ 된다. ‘좋은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모든 측면, 모든 조건에서 ‘좋은 사람’은 없다.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의 감옥에 갇힌 사람은 있다. 같은 논리로, 자신을 ‘나쁜 사람’ 프레임에 가둬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늘 ‘나쁜 사람’일 수는 없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자신의 몸도 마음도 주변 환경과의 치밀한 연결 속에서 순간순간 변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이야말로 당신이 할 일이다. ‘좋은 사람’ 역할극을 포기하고, 자꾸 변하는 자신을 ‘주시해 준다’면 그것이 자신과 타인의 자연적 품성을 이해하는 공부다. 그 이해를 실행하는 게 ‘좋은 삶’ 아닐까.

사족 한 마디! 당신에게 자기 일을 맡겨놓고 담배 태우러 나간 그 동료 있잖은가? 그는 늘, 어디서나 당신에 대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할까?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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