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택칼럼] 마무리를 초심으로 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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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한파’ 속 세밑을 보내며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2-26 00:02:40

한 해의 끝자락, 세모(歲暮)다. 격동의 2022년도 저물어 간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올 한 해를 표현하기에 더한 안성맞춤의 표현이 없다. 누군가는 황혼 빛이 곱다고 말하지만 아쉬움에 가슴이 쓰리다. “미(美)는 우수(憂愁)와 함께한다”는 영국 시인 존 키츠의 말처럼 우리는 12월의 아름다움 속에서 내면으로 젖어드는 회한이 있음을 느낀다.

그 회한의 기저엔 갈수록 깊어지는 불황이 자리하고 있다. 올 연말이 더욱 을씨년스런 이유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경제 상황이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국가신용도 위험 수준을 나타내는 신용 부도 스와프(CDS)프리미엄이 5년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 5년물의 CDS프리미엄은 70bp(1bp=0.01%p)안팎이다. 5년 만에 최고치다.

CDS프리미엄은 국가 혹은 기업의 파산 위험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료다. 대외 신인도가 낮아 부도 가능성이 커질수록 CDS프리미엄이 높아진다. 고강도 긴축과 부진한 수출 실적, 장기화된 고물가 여파로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글로벌 긴축 가속화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전 세계 교역량도 위축되면서 반도체 등 주력 품목의 수출 신장세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대비 수출 비중은 43%정도로, 주요 20개국(G20)국가 중 독일(46.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수출에 암운(暗雲)이 넓고 진하게 드리워졌다.

이런 현실에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연동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3.25%로 급등했다. 최근 2년 사이 레버리지(차입투자)를 활용해 공격적으로 자산을 사들인 20·30 세대 위주의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족, ‘빚투(빚으로 투자)’족의 원리금 상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서민 가계뿐 아니라 소상공인도 이자 부담에 허리가 휠 정도다. 자영업자들은 한밤이 되기 전에 간판 불을 끈 채 고객을 맞을 희망의 끈을 놓은 모습이다. 처연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북한의 잇단 미사일 시험발사와 7차 핵실험 준비 등 대외 악재 또한 계속되면서 3고(고환율·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경제 한파’가 당분간 지속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우리네 삶의 의지마저 세상 분위기에 꺾일 순 없다. 긍정적 굳센 의지로 이겨 내야 한다.

물론 삶을 대하는 시각은 각자 다르다. 당나라 시인 낙천 백거이(樂天白居易)는 세월의 흐름에 담담한, 아니 세상사에 초월적인 모습이었다. 그의 시 ‘술을 마주하고(對酒)’를 보자. “부싯돌 불빛 같은 찰나의 순간에 잠시 이 몸을 기탁한 것인데/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기쁘고 즐겁게 살면 될 것을/ 입을 크게 벌려 웃지 않는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사람일세(石火光中寄此身隨富隨貧且歡樂不開口笑是癡人).”

낙천은 나이 듦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거울 보고 늙음이 기뻐서’라는 시에서 그는 “늙지 않았다면 요절했을 것이고/ 요절하지 않았다면 노쇠해 마땅한 법/ 늙음은 요절보다 나은 것/ 그 이치 의심할 나위 없네”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시대 시인 두보(杜甫)는 세월의 흐름을 안타까워했다. 그의 시 ‘곡강(曲江)’ 제4구는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었네(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로 유명하다. 두보는 짧은 인생을 슬퍼하며 퇴청 때마다 옷을 저당 잡혀 마신 술로 거나하게 취해 귀가하곤 했다나….

여하튼 한 해를 어떻게 하면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폭설과 한파가 이어지는 세밑, 소외된 이웃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정신이 요청된다. 노자 ‘도덕경’에 “마무리를 처음처럼 신중하게 하면 실패할 일이 없다”는 말은 시작의 중요함 못지않게 끝매듭을 잘 짓는 것도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12월이 재생을 약속하는 ‘작은 영원’이 아니고 단지 죽음을 뜻하는 ‘종말의 시간’이라면 세모의 풍경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12월의 거리에 울려 퍼지는 성탄의 찬양과 차가운 겨울 하늘의 별들이, 제야(除夜)의 종소리처럼 울림 큰 비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것들이 마지막을 의미하는 만가(輓歌)나 완성의 표상이 아니라, 내일의 꿈을 약속하는 미완성 교향악과도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만물은 바뀌고 세태가 변하는 것은 우주법칙이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되는 법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도층부터 베푸는 삶으로 올 한 해 매듭을 잘 지어야겠다. 유종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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