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낙태죄 개선 입법 유감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전문가칼럼

방치된 낙태죄 개선 입법 유감

헌법불합치 결정된 낙태죄 규정, 개정 시한 넘기고도 여전히 논의 부진
낙태권, 아직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 아냐… 허용범위 최소에 그쳐야 할 것

이동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28 11:18:25

국회사무처가 19일 발표한 ‘최근 헌재결정과 개정 대상 법률 현황 2호’에 따르면 헌법재판소가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입법 공백이 생기지 않게 입법개선 촉구를 했으나 아직 개정되지 못한 법률이 41건이라고 한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이 형법의 자기낙태죄와 의사에 의한 업무상 동의낙태죄 조항인데 지난 2019년 4월11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었다.

헌법재판소는 현행법의 효력은 인정하면서 2020년 12월31일까지 법 개정을 하라고 촉구했었다. 그러나 개정 시한을 넘기고도 1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국회에서의 법 개정 논의는 매우 부진한 상태이다. 2021년 1월1일부터는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상실해 처벌할 수도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합법인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다. 그래서 법의 사각지대에서 음성적인 낙태가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 피해는 결국 임신한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낙태에 반대하고 허용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낙태죄 체계가 그렇다. 형법에서는 원칙적으로 전면 금지하면서 모자보건법에서 처벌받지 않는 인공임신중절수술 사유를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생·유전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이 불가한 혈족·친족 간 임신, 임신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이 그런 사유들이다.

낙태죄로 보호하려는 법익이 태아의 생명권인데 생명권은 절대적인 기본권이다. 그래서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낙태가 허용되려면 그에 상응하게 적어도 산모의 생명·건강상의 위험이나 선택권이 완전히 박탈된 강간에 의한 임신에서의 해방 같은 목적은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나라 낙태법 체계가 바로 그러했다.

그런데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유명한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낙태를 처벌하는 주법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근거로 산모의 생명권·건강권이 아닌 ‘사생활의 권리’를 들었다. 태아를 독립된 생명체가 아닌 산모의 신체 일부로 보아 낙태를 전면 허용한 것이다.

산모와 출생하지 않은 태아의 관계에 특수한 면도 있지만 절대적 기본권인 생명권 제한의 근거를 그에 비교할 바가 못 되는 사생활권에서 찾은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헌법재판소도 낙태의 근거를 사생활권과 유사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서 찾았다. 모자보건법이 정한 사유 외에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낙태죄 형법 규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미국 판례를 좇아 간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올해 6월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는데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해 버린 것이다. 헌법에는 낙태권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결국 태아의 생명권을 제한하는 낙태가 허용되려면 적어도 헌법에 낙태권이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생활권에서 낙태의 권리를 찾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논리가 부족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헌재가 근거로 든 ‘자기결정권’도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역시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이 아니라, 포괄적인 성격의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에서 도출해 낸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연방대법원이 낙태를 전면 금지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낙태권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음을 선언하면서 ‘낙태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은 국민과 그들이 선출한 대표에게 반환된다’고 하여 낙태권을 헌법에 명시할지 말지를 이제 입법부가 결정하라고 공을 넘겼을 뿐이다. 원래 정치가 합의해서 정할 사안을 뒤늦게나마 정치에 돌려줬다고 보면 될 듯하다.

우리나라도 낙태죄 개선 입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현재 정부안 포함 6건 법률안이 발의되어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심사조차 안 된 채 방치되고 있다. 역대 최악으로 평가되는 이번 국회에서 백년대계의 법이 차분히 심사되리라는 기대는 솔직히 없다. 하지만 미국의 지난 50년 흐름을 참고한다면 정의당이나 민주당의 원안처럼 사실상 폐지로까지 가닥을 잡는 것은 헌재 결정의 취지를 곡해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아직 헌법에 낙태권이 명시된 것은 아닌 이상 낙태 허용이 최대한 자제되길 바라면서 헌재 소수의견에 적시된 문구를 떠올려 본다.

“지금 우리가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합헌의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모두 모체로부터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태아였다.”

이동호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