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3]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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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는 예를 표한 뒤 신음하는 세자빈을 부탁했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06 09:10:07

로제타 선생은 아침을 간단히 마치고 서둘러 경복궁으로 나섰다. 1895년(을미) 10월 8일 아침, 가을이 깊어가는 서울 거리는 어제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릴리아스 선생 병원에서 온 전갈을 받기 전에는 그랬다. 보내준 쪽지에는 아침 일찍 궁궐에서 부름이 있다고 함께 가자고 적혀 있었다. 릴리아스 선생은 왕후의 주치의로 일하고 있다. 그렇다면 왕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까? 흘낏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왕진가방을 조심스레 들고 길을 재촉하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로제타, 여기예요!”

어느 사이 릴리아스 선생이 곁에 와 있다. 릴리아스는 언더우드의 부인으로 로제타보다 훨씬 일찍 조선에 도착한 선교사이며 의사이다. 나이도 로제타보다 10세 이상 선배였다. 언더우드 부부는 막 조선에 도착한 로제타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릴리아스는 왕후의 주치의를 맡아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며 왕과 왕후가 주최하는 연회에 초대되는 일도 많았다.

국왕부처가 서양 선교사들에게 호의적이어서 로제타를 비롯한 다른 선교사들도 함께 연회에 참석한 적이 많았다.

“릴리아스 선생님,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데 저까지 부르신 거예요? 혹시,.. 왕후께서 많이 안 좋으신가요?”

“쉿! 사실은 아침 일찍 세자궁에서 나인이 나왔어요. 세자빈이 아픈가 봐요. 그런데, 이상한 게 많아요. 나인의 얼굴이 다 죽은 사람 같았어요.” 로제타가 물었다.

“그리고 보통,... 세자빈의 일이라면 왕후가 연락하시지 않았을까요?”

“로제타, 새벽에 총소리 들었어요?”

“네. 이른 새벽에 이상한 총소리! 군대가 훈련을 한다 해도 낮에 할 텐데, 정말 이상하고 불안해서, 깨어난 김에 기도를 드렸지요.”

“맞아요. 심상치 않은 총소리였어요. 마음이 계속 불편하고, …그래서 궐에 혼자 들어가기가 내키지 않아서 로제타 선생과 함께 가자고 한 거예요.”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광화문에 이르렀다. 궁궐 안은 화약냄새로 어지러웠고 곳곳에 무장한 일본수비대들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었다. 하지만 두 선교사는 용감한 전사처럼 앞으로 향했다. 광화문도 그랬지만 궁궐 안의 문들과 전각들은 어쩐지 흉흉하고 쓸쓸했다. 지나는 내관들과 궁녀들도 침울했다. 릴리아스는 평소에 궁인들이 다소 사치하고 거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풀죽은 그들의 표정이 측은하기까지 했다.

대기하고 있던 세자전의 상궁이 그들의 앞에 섰다. 중년의 상궁은 릴리아스 선생을 인도했다. 왕세자는 세자빈과 함께였다. 세자는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한숨도 자지 못한 듯했다. 세자는 릴리아스 선생에게 예를 표한 뒤 신음하는 세자빈을 부탁했다.

스무 살 남짓한 세자빈은 헝클어진 머리에 얼굴에는 타박상이 있었다. 간밤에 높은 곳에서 발을 헛디뎌서 이렇게 되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상했지만 세자에게 자세한 것을 묻기는 힘들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릴리어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세자빈은 거의 혼수상태였다. 열이 있었고 헛것을 보는지 꿈을 꾸는지, 가끔씩 “마마, 마마, 마마…”라고 부르며 신음하고 있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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