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6]은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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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연재소설

역사소설 ‘제국의 꽃’ [6]은비녀

은 재질에 붉은 매화무늬가 새겨진 비녀였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11 11:45:59

“전하,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침 일찍 궁궐에 도착한 베베르와 알렌은 미우라 일본공사와 대원군에 밀려 한 시간 넘게 고종을 만나지 못하고 대기해야 했다.

“베베르 공사. 새벽부터 미우라 공사가 아버님을 모시고 와서 몇 가지 문서에 사인을 하라고 했다오. 나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왜당정부를 세우는 문서지요. 모든 게 저들이 치밀하게 꾸민 일이라는 걸 증명하듯 말입니다. 아버님은 그들에게 이용당하는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놈들의 손에 잡혀 며느리를 해치고 아들의 손과 발을 묶는 일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전하, 전하와 왕비마마를 지켜 드리지 못하여 송구할 따름입니다. 다이교관은 무슨 일을 한 겁니까? 훈련대는 다 떨고만 있었습니까? 이른 새벽에 전하께서 사람을 보내셨는데 이미 일본군이 궐을 점령해 버려서 제가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불민을 용서하옵소서.”

알렌 대리공사가 말했다.

“이런 일을 대비해서 관문각에 늘 서양분 들을 모셔 두었지요. 그리하면 무도한 저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작년 갑오년의 변란 때도 저들은 궐로 쳐들어와 나와 왕비를 협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끔찍한 일이... 왕비가 살아있어야 할 텐데요!”

고종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전하, 새벽에 일어난 일은 끔찍하옵니다. 그런데 끝까지 이 사건을 지켜 본 자가 있다 하옵니다. 전하! 건축가 사바틴이 어제 당직이었습니다. 사바틴이 이 모든 만행을 지켜보았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윌리엄 다이 교관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다이의 무능함을 생각하면 상대하기도 싫지만 증인이 필요하니 그의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합니다. 전하, 가슴 아프고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서울에 있는 다른 나라 외교관들에게 모든 것을 폭로할 것입니다.”

“정말 고맙소, 베베르공사. 그대의 마음은 잊지 않겠소이다.”

그들이 물러간 뒤 고종은 안 상궁을 불렀다.

“왕비전은 지금 어떠하냐?”

“전하, 숨진 아이들의 시신은 수습되었나이다. 다친 아이들을 치료하러 내의원에서 나왔사오나,...”

김 상궁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데?”

고종이 물었다.

“모두들 치료를 거부하고 있사옵니다. 중전마마를 지켜드리지 못한 죄인이라 하여 거적을 깔고 꿇어 있사옵니다. 죽음을 내려 주십사고 조아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충정은 알고 있다. 중전을 지키지 못하여 진즉 죽을 사람은 내가 아니더냐? 처소로 돌아가 치료 받으라 이르라.”

“예, 전하, 하온데,..”

김 상궁이 머뭇거렸다.

“이것을 전하께 드려야 하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