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8] 긴밀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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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이렇게 얻은 결실을 잘 보존하도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13 11:23:38

미우라는 난처했다. 이번 ‘여우사냥’이 일본의 짓임을 숨기려고 치밀하게 준비하고 연막도 피웠다. 대원군에게는 일찌감치 작업을 했고 새벽 1시에 오카모토를 공덕리 아소정으로 보냈다. 일본군은 아소정 담을 넘어 들어가 순검들을 결박하고 모자와 제복을 빼앗아 입고 조선인인 양 위장도 했다. 오카모토는 잠든 대원군을 깨워 입궐할 때가 되었다고 했으나 정작 대원군이 시간을 끌어 두 시간 이상 지체됐다. 결국 대원군을 억지로 가마에 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두운 새벽에 끝낼 일이 훤할 때까지 연장되었다.

‘이 늙은이! 꾸물럭대다가 일을 망쳤다!’

미우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은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했다.

“아, 죄송합니다. 점심을 잘못 먹었나 봅니다. 갑자기 속이 안 좋아서,... 결례이오나 양해를 ....”

미우라 공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방을 빠져 나왔다. 스기무라 서기관이 뒤따랐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양놈들을 어떻게 단속 했어야지! 현장을 본 놈들이 누군지 당장 알아 봐!”

미우라는 외교관들이 모두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저 밥맛없는 러시아 녀석, 사사건건 간섭이야. 저 놈도 확 베어버렸어야 했는데.’

책상 위에는 본국에서 온 전보가 있었다. 사이온지 외상의 것이었다.

“공사관 부속무관이 참모본부에 전보하기를, 오늘 아침 대원군이 훈련대를 이끌고 왕궁으로 들어갔고 왕비는 아마도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했음. 급히 전보로 보고하기 바람. 또 일본인이 이 사건에 가담했는지 안 했는지도 보고하기 바람.”

‘썅! 새벽에 해군소좌 니이조 도키스케가 대본영 해군 군령부장에 긴급사태 발생을 보고한 게 맞구먼. 바가야로!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그나저나 양놈들 관리에 실패해서 어쩐다?’

미우라는 서둘러 사이온지 외상에 보낼 보고서를 작성했다. 아침에 보내고 두 번째였다.

“왕비의 소재는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나 아마도 살해당했을 것임. 일본인이 이에 가담했는지 안 했는지는 지금 조사 중임”

첫 번 보고 때는 왕비가 죽지 않았다고 잡아떼었다. 다음과 같은 전신도 덧붙였다.

“이번 사변에 대한 상세한 사정은 전신 또는 서면으로 다 말씀드릴 수 없는 점이 있으므로 내일 가는 배편으로 호시 도오루를 귀국시킬 것임.”

미우라는 급히 조선 법부고문 호시를 일본으로 보내는 인편에 을미왜변 사건을 이토 총리에게 상세히 보고하는 서한을 10월14일 자로 올렸다.

“우리 세력을 유지하고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득불 이렇게 하게 된 바, 그 전후 사정을 잘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요컨대 이번 사건은 과거 20년간 조선의 화근을 단절하여 정부의 기초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단초를 열 것이라고 본관은 확신하고 있는 바, 비록 그 행동이 좀 과격한 바 있었다 하더라도 외교상의 곤란만 극복한다면 우리의 대한정략은 이로써 확립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은 방법이 다소 졸렬하고 너저분하여 비방은 면하기 어렵겠지만 어쩔 수 없이 시작하였고 그 목적을 달성하였으니 이렇게 얻은 결실을 잘 보존하도록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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