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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법원이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며 사실상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허용된 것이 아니냐는 판단을 두고 의료계와 한의학계 간 팽팽한 긴장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삭발 및 대법원 규탄 집회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반면, 한방의료계(한의계)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사용’이 사실상 허용된 것으로 받아들이며 합법화 추진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11일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 관련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 상고심에서 벌금 8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환자의 신체 내부를 초음파 기기를 사용해 68차례에 걸쳐 촬영하고, 자궁내막 상태를 확인·진단하는 등 진료행위를 했으며 이 과정에서 환자의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쳐 환자에게 피해가 발생했다.
대법원은 A씨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면허 외적인 의료 행위가 아니고 안전하다는 이유에서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 기기’ 사용이 ‘무면허 의료 행위’가 아니라는 근거로 크게 3가지를 들었는데 △관계 법령상 사용 금지 규정 없음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움 △한의학적 의료 원리를 적용·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이 명백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음 등이다.
이에 반해 1심과 2심은 “초음파 진단기기는 서양의학의 학문적 원리에 기초해 개발·제작됐을 뿐만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판독하지 못하면 환자의 생명·신체에 위험할 수 있다”며 A씨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뒤집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대법원은 기존 대법원의 판례와 다르게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해 의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할 때 의학적 전문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아 한의사가 사용해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없는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앞서 양대 최고법원인 헌법재판소는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무면허 의료 행위에 해당한다고 2013년 결정한 바 있어 논란은 확산했다.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위법하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는 의료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는 한의사의 헌법 소원을 기각했는데, 당시 헌재는 “이론적 기초와 의료 기술이 다른 한의사에게 허용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당시 헌재는 “과학 기술 발전으로 의료 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돼 보건 위생상 위해의 우려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에게 그 사용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해석돼야 한다”며 사실상 한의계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불허하는데 힘을 실었다.
하지만 이번에 대법원이 과거 헌재 결정과 상반된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 무효 투쟁 나설 것’ 의료계 릴레이 ‘항의 투쟁’
이 같은 판결에 의료계와 한의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된 양상으로 ‘찬반 양론’을 펼치며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에서는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국민 건강과 생명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라며 규탄에 나섰다. 의료계는 지난 주말 항의 시위에 나서 초음파 기기를 다루는 한의사의 역량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7일 의협에 모여 ‘한의사 초음파 사용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대응을 위한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필수 회장, 박성민 의장 등 의료계 대표자들이 60여명 참석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26일 대법원 판결에 반대한다며 삭발까지 감행했다. 임현택 소청과의사회장은 같은 달 26일 경기도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방문해 이번 판결에 참여한 노정희 대법관을 사법부에 대한 업무방해죄와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 회장은 7일 대표자 회의에서 “의료계는 이번 판결이 국민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결코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이 사건은 초음파 진단기기를 미숙하게 사용해 환자와 병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환자에게 치명적 위해를 입힌 심각한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공명정대한 판결로 국민의 소중한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할 대법원이 어떻게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대단히 유감스럽고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환자 자궁내막암 진단을 놓쳐 환자에게 명백하게 피해를 입힌 한의사를 엄벌에 처하기는커녕 한의사의 무분별한 현대 의료기 사용을 묵인한 이 불공정한 판결을 의료계는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의료계 대표자 회의 결과 △대법원 한의사 초음파기기 판결의 부당함 홍보 △불법 한방의료 피해신고센터 운영 △파기환송심 대비 △범의료계 대책기구 구성 등의 다양한 안들이 도출됐다.
이 밖에도 서울특별시의사회 박명하 회장을 비롯한 의사회원들은 4일 대법원 앞에서 150여명의 의사회원이 모여 ‘한의사 초음파 기기 사용 대법원 판결 규탄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謹弔(근조) 대법원’ 깃발까지 등장했다.
서울시의사회는 결의문을 통해 “이번 판결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무면허 의료행위와 의료사고를 조장하는 사법 살인과 다름없다”며 “무자격자에게 사실상 무죄를 선고한 판결로 대한민국 국민과 환자는 크나큰 위해를 입게 됐다”고 주장했다.
한의협, 의사단체 반발에 ‘합법 의료행위 밝힐 것’ 적극 반박
의협 등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 한의계는 오히려 의사들의 초음파 오진 사례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면서 ‘내로남불’ 행태라고 반박했다.
한의협은 “이번 판결에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은 합법’이라는 내용 이외의 다른 부가적인 판결이나 결정은 전혀 없다”며 “판결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것은 의료법 위반이 아니며 합법적인 의료행위’임을 명료하게 밝힌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한의사 단체는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일일이 맞대응하기보다는 내실 강화 및 국민 인식 개선 홍보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권선우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의사단체가 대법원의 판결을 정면 부정하고 몰상식한 대응을 이어가는 것이 심히 유감스럽다”면서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국민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과도한 비난이나 거짓 선동 등은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어 “협회는 판결 이후 진료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내실을 기하고 있다. 회원 교육, 대국민 홍보 등의 회무에 집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의계에서는 초음파 진단 기기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는다는 의료계 주장에 대해서 한의협은 “한의사들은 한의대에서 본과 4년간은 물론 한의사가 된 후에도 보수교육 등을 통해 충분한 초음파 실습과 교육을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의계에서는 대법원 판결로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가능해졌지만 한의사가 당장 초음파 기기를 교육이나 연구가 아닌 진료에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의료계의 과도한 반발이라는 지적이다.
한방 초음파는 아직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에 등재 자체가 돼 있지 않아 관련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또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에 건강보험이 적용(급여화)되려면 건강보험 행위 급여목록에 등재가 되고 수가(진료비)도 책정돼야 하므로 대법원 판결과 별개로 보편적으로 진료에 사용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한편 정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업무에 있어서 대법원 판단은 반영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건강보험 급여 등 정책적인 부분이 남아있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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