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0] 청년 명포수

이 시간 주요기사

뉴스 > 연재소설

최문형 연재소설

작은 총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명포수였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17 10:42:10

“그래서 그 날 훈련대가 마마를 지켜드리지 않은 겁니까?”

중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새로이 편성된 시위대도 있었으나 변변한 무기가 없었다고 하지요. 그 속에서 지난 번 임오년 변란 때 중전마마를 피신시킨 홍계훈 연대장이 놈들의 총과 칼에 스러졌다고 합니다. 두 분 전하께서는 궁을 빠져나가 피신하셨을 수 도 있었는데 숙직을 하던 농상공부 협판 정병하가 두 분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라고 여우같이 안심시켰다지요. 그 놈도 제 명에 죽어서는 안 되는 놈입니다. 중전마마를 끝까지 지키다 처참하게 돌아간 이경직 대감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솟구칩니다, 어르신! 이대감은 양 팔이 잘리면서도 끄덕도 않고 마마의 처소를 지키시다가,...”

창수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떻게 전하를 거짓으로 안심시켜 무방비로 당하시게 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런데, 진사 어른, 중전마마께서 궁을 빠져나가 어딘가에 피신하여 살아 계시다는 소문도 있다 하는데 들으셨는지요?”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상궁들과 태자마마가 중전마마의 시신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형님, 왜당내각이 방을 붙인 거 읽어보셨습니까? 훈련대 해산하는 문제로 훈련대와 순검들이 대궐에서 충돌했다는 방 말 입니다. 뿐인가요? 서울에서는 이번 변고가 대원군과 중전마마의 권력다툼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둥 별 해괴한 말이 다 나돈답니다.”

“그 모든 게 다 저 간악한 이토 히로부미와 미우라 고로의 농간입니다, 아버님! 국모께서 얼마나 덕이 많고 사랑이 넘치는 분입니까? 신정황후 조대비를 얼마나 지성으로 받드셨는지는 온 나라가 아는 일입니다.”

중근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중근은 지금이라도 뛰쳐나가 이토와 미우라를 없애고 싶었다. 그는 무관 집안의 후손답게 다부진 체격과 시원한 외모, 예리한 눈썰미와 순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른들의 뜻에 따라 서당을 다녔으나 책만큼이나 총도 익숙한 청년이었다. 천봉산록 자락에서 말 위에서 사냥을 즐겨 작은 총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명포수였다. 20보 떨어진 곳에 놓인 동전을 맞출 정도의 실력자이기도 했다.

네 사람은 정원에 해가 저물 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시름에 잠겼다. 해가 넘어가고 공기가 다소 쌀쌀해지자 안태훈은 김순영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형님, 이제 안으로 드시지요. 저희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중근은 아버지와 함께 산채를 떠났다. 창수는 부친을 모시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곽씨 부인이 반겼다.

“이제 가을이 깊어 해가 지면 춥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너무 염려 마시구료. 이제 몸이 많이 좋아졌소, 부인!”

부모님의 다정한 대화를 뒤로 창수는 저녁문안을 드리고 툇마루로 나왔다. 초생달이 되려고 이울어지는 달빛을 받으며 풀벌레가 속절없이 울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가을이었다. 창수는 충청도 보은까지 가서 해월 대도주를 만났다. 황해도에서 명망 있는 도인 15명에 뽑힌 것이다. 교도들이 마련해 준 해주 특산물 향먹을 선물로 들고 최시형 선생을 만나러 떠났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필진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