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제국의 꽃’ [11] 아기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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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받들어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18 09:42:44

재작년(계사) 정초에 창수는 동학 소문을 들었다. 곧바로 인근 마을 동학도인 오응선을 만났는데 양반인 그가 상놈인 자신을 하대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게다가 ‘하늘님을 모시고 차별 없는 새 나라를 만든다’는 말에 반했다. 본래 양반 가문이었으나 상인의 신분이 되어 모욕을 당하고 살던 창수는 즉시 동학에 입도하여 열심히 포교해 황해도와 평안도 일대까지 창수의 이름이 널리 퍼졌다.

이름도 ‘창암’에서 ‘창수’로 바꿨다. 젊은이였지만 교도가 많아 ‘아기접주’란 별명까지 붙었다. 창수는 황해도 대표 도인 15명에 뽑혀 도주인 해월 선생을 만나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일행이 몇 날이 걸려 충청도 보은군 장안에 도착하니 집집마다 동학 주문 외우는 소리가 쟁쟁했다.

해월선생은 맑은 얼굴에 검고 큰 갓을 쓰고 희끗희끗한 긴 수염을 하고 계셨다. 창수와 황해도 도인들이 선생을 뵙고 있을 때 심부름하는 사람이 수시로 들어와서 선생께 보고를 올렸다. 동학혁명군이 일어나고 있었다. 남도 각 지방에서 동학당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소식, 어떤 동학교도가 가산을 전부 빼앗겼다는 보고부터 고부에서 전봉준이 병사를 일으켰는데 연전연승하고 있다는 것까지 선생께 밀려 들어왔다. 해월 선생은 투명하고 결연한 눈빛으로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호랑이가 물려고 덤비는데 가만히 앉아서 죽을 사람이 어디 있나?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가서 싸워야지!”

대도주로부터 이 말을 들은 각 지역 대접주들이 순식간에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황해도 도인 15명에게는 바로 접주 임명 첩지가 내려졌다. 해월선생의 원형 도장이 찍힌 문서였다. 그들은 첩지를 받들고 다시 한 번 대도주께 큰 절을 올리고 일어섰다. 다른 지방 도인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선생과 오래 마주 하지는 못했다.

동학당이 봉기한 것은 지난 2월 고부민란이 시작이었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이 전봉준을 의지하여 봉기한 이 민란은 안핵사 이용태의 패악으로 다시 불이 붙었고, 결국 4월에 전봉준이 동학접주들과 함께 무장현에 모여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을 천명하는 창의문을 발표하고 궐기하였다. 그들은 순식간에 전주성까지 점령했고 그 기세로 바로 서울로 올라와 왕을 받들어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당시 정부가 동학당의 요구를 수용했고 왜군과 청군이 난을 진입한다는 구실로 조선에 들어오게 되니, 전봉준은 초토사 홍계훈과 전주화약(6월)을 맺고 해산한다. 하지만 급기야 일본군대가 궁궐을 점령해 국왕부처를 포로로 삼기에 이르니(갑오왜란), 전봉준과 동학군은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다시 봉기한 동학농민군이 타도할 적은 이제 왜적과 친일괴뢰였다. 일본은 임금을 유폐해두고 왜당괴뢰정부를 세워 개혁의 이름(갑오경장)으로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포장하고 있었다.

이제 왜적과 친일괴뢰로부터 임금님을 구출하는 일이 급했다. 1차 봉기 때는 탐관오리 숙청을 내세웠으나 2차 봉기 때의 동학군은 조선을 둘러싼 세력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일본·청국·서양 세력을 물리치고자 했다. 그러한 동학당의 뜨거운 애국심 한 가운데 신임 접주 창수도 있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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